그 모든 아름다움/음악

첼리스트 김민지, 깊이 있는 연주가

난짬뽕 2020. 11. 19.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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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현대음악 <뮤직프렌즈> 10월호

 

음악적 깊이가 숨어 있는 풍경 안에서의 도전과 기다림

첼리스트 김민지

 

첼리스트 김민지의 음악세계는 청중을 사로잡는 강렬함이 전해지지만, 그 안에서 부드러운 여운이 묻어난다. 한순간에 듣는 이의 마음을 묶어 놓을 만큼, 연주자의 색채가 뚜렷하다. 음악가로서 자신만의 독창성을 갖고 있다는 것은 매우 행복한 일이다. 김민지는 지금 자신의 첼로 선율을 향해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만의 깊이 있는 음악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글 엄익순

 

이날 역시 촬영은 이준용 실장님이십니다.

 

소나타, 첼로로 노래하다

오푸스 마스터스 시리즈(OPUS Masters Series)는 작곡가 류재준이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고 있는 연주자를 선정하여 청중에게 소개하는 공연으로 그동안 세계적인 연주자의 무대를 비롯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가들의 연주를 한국과 유럽을 넘나들며 꾸준히 선보여 왔다.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와 첼리스트 요하네스 모저, 바이올리니스트 닝 펑의 첫 내한 공연을 비롯하여 피아니스트 허원숙,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 김소옥 등 최고의 연주력을 무대에 고스란히 담아내며 클래식 애호가들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연주회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지난 9월 21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과 25일 광주 유스퀘어 문화관에서 펼쳐진 오푸스 마스터스 시리즈는 첼로의 낭만으로 가을밤을 수놓은 아주 특별한 음악선물이었다. 뛰어난 테크닉과 서정적인 소리로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김민지의 첼로 리사이틀 <The Cello Sonatas>.  베토벤과 브리튼, 힌데미트, 그리고 브람스의 매력적인 첼로 소나타를 한 자리에서 모두 만날 수 있었던 색다른 시간이었다.  

 

"첼로 소나타 작품만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한다는 것이 사실 연주하는 저는 물론 음악을 듣는 청중에게도 조금은 버거운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전형적인 클래식 전통의 선율로 무대를 꾸미고 싶은 마음에 조금 용기를 냈습니다."

 

연주회장을 찾은 많은 사람들은 이번 공연을 통해 시대가 변함에 따라 소나타 형식이 어떻게 변천해 갔는지를 느낄 수 있어 매우 감동적인 무대였다고 한결같이 극찬했다. 16세기 중기 바로크 초기 이후에 발달한 악곡의 형식으로 기악을 위한 독주곡 또는 실내악으로 소개되고 있는 것이 바로 소나타(sonata)로, 비교적 대규모 구성인 몇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서양음악사를 관통하며 존재해온 소나타는 대비되는 2개의 주제가 제시부, 발전부, 재현부를 통해 때로는 조화와 대비, 반복과 변화를 보이며 고전파에서부터 현대, 독주곡에서 협주곡에 이르기까지 음악의 중심에 자리해왔다.

 

다채로운 첼로 음색과 특유의 카리스마로 국내외 수많은 협연과 초청연주를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첼리스트로 인정받고 있는 김민지가 이번 무대에서 선보인 음악은 베토벤 말기에 그가 추구하던 자유로운 형식으로 작곡된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4번'에서부터 대칭적인 구조의 5악장으로 이루어진 힌데미트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와 거장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를 위해 작곡된 브리튼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그리고 전형적인 소나타 형식과 구성으로 이루어진 브람스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2번'으로 아름다운 첼로 선율을 통해 관객들의 마음을 한순간에 사로잡았다.

 

 

정직한 태도로 음악을 대하다

'현란한 테크닉과 아름다움으로 청중을 깊은 심연에 빠져들게 하였고, 감미로움과 긴장감을 가진 그녀의 첼로소리는 우리의 눈을 감기게 하였다'(더 보스턴 글로브)라는 평을 받고 있는 김민지가 첼로를 접한 것은 일곱 살 무렵. 그 당시 노래도 잘 부르시고, 기타도 수준급으로 연주하시던 아버지는 취미로 즐겨보라는 어머니의 권유로 첼로를 배우고 계셨다. 이미 네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있었던 그녀는 아버지가 연주하시는 선율에 귀 기울이며 첼로에 매료되었다. 레슨을 받고 계신 아버지 곁에 앉아 어깨너머로 귀에 담는 첼로 소리는 왠지 모르게 마음을 편안하게 해줬다. 어려서부터 유독 청음이 뛰어나다는 칭찬을 들었던 그녀는 설레는 기분으로 첼로를 접했고, 열두 살이 되었을 때 첼리스트의 길을 걷고자 결심했다. 그러나 전문 음악인의 길을 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여정인지를 잘 알고 계시던 부모님은 강하게 반대하셨다.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심을 꺾지 않았던 이유는 단 한 가지, 첼로가 정말로 좋았어요. 절대로 첼로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저의 모습에 부모님께서 마음을 돌리셨죠. 아버지는 지금도 저의 연주회가 끝나고 나면, 언제나 가감 없이 따듯한 조언을 건네세요. 연주 테크닉에서부터 소소한 표정 하나까지 정확하게 모니터링 해주시죠. 그 말씀을 들으면서 저 또한 스스로 단점을 찾아 보완을 하고, 무대에서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한 새로운 노력들을 찾게 됩니다."

 

김민지는 2003년 미국 아스트랄 아티스트 내셔널 오디션에서 우승하면서 미국 무대에 데뷔하였다. 만 16세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영재로 입학, 2000년 졸업과 동시에 도미하여 뉴 잉글랜드 콘서바토리에서 석사, 전문 연주자 과정 및 최고 연주자 과정을 전액 장학생으로 졸업하였다. 2005년에는 프랭크 헌팅턴 비비 장학금 수여자로 선정되어 프랑스 툴루즈 콘서바토리 최고 연주자 과정을 마쳤다. 국내에서 동아일보, 한국일보, 조선일보 콩쿠르에서 모두 1위로 입상하였으며, 난파콩쿠르와 KBS 신인 음악콩쿠르에서는 대상을 차지하며 클래식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저는 음악을 대하는 저의 태도가 늘 정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빨리 갈 수 있는 길이 있겠지만, 저는 사실 그런 지름길을 잘 택하지는 않아요. 그냥 제가 가야 되는 길을 저의 속도에 맞춰 가는 경향이 있어요. 삶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도, 또한 음악적으로도 모두 제가 목표한 바를 향해 솔직한 모습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합니다."

 

정직하게 살고자 하는 인생철학대로, 그녀는 늘 매순간 자신이 걷고 있는 길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했다. 세계적인 엠마누엘 포이어만 국제 첼로 콩쿠르에서 전 세계적으로 오직 12명만이 초청된 참가자 중 한국인 최초로 장학금을 수여받았고, 프리미오 아르투로보누치 국제 첼로 콩쿠르 2위, 아담 국제 첼로 콩쿠르 3위, 허드슨 밸리 현악 콩쿠르와 뉴 잉글랜드 콘서바토리 현악 콩쿠르 및 HAMS 국제 첼로 콩쿠르 등에서 모두 1위로 입상했고, 어빙 클라인 국제 현악 콩쿠르에서는 1위 입상과 함께 위촉작품 특별상까지 거머쥐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세계적인 여러 콩쿠르에서 입상하며 두각을 나타낸 이러한 음악적인 결실들이 모두 자신에게 큰 깨우침을 준 스승들의 가르침 덕분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첼리스트가 되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된 저에게 '첼로라는 것은 바로 이런 거야'라며 마음의 문을 박경옥 선생님께서 열어주셨다면, 박상민 선생님께서는 기초적인 면에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서 언제나 잘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셨죠. 정명화 선생님은 제가 가지고 있는 음악적인 면을 활짝 열어 더 넓은 세계에서 마음껏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해주셨죠. 2000년에 뉴 잉글랜드 콘서바토리에서 로렌스 레서 선생님께 레슨을 받고 나서는 '그동안 내가 첼로로 무엇을 했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한 번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레서 선생님은 어려서부터 첼로를 하셨지만, 하버드대학 수학과를 나와 전기회사에서 근무하셨다가 다시 음악의 길로 돌아오신 분이에요.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제가 음악인으로서 오롯이 음악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좀더 폭넓은 시야로 주위를 둘러보게 하셨던 것 같아요. 음악적인 고민에 빠져 있던 시기 때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 큰 성장을 이룰 수 있게 되어 정말로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인터뷰 때 만난 김민지 첼리스트는 정말로 열정적인 분이셨어요.

 

깊이 있는 연주자가 되기 위해

첼리스트 김민지가 무대에 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관객과의 소통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적인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늘 고민하고, 연주를 통해 사람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집중한다. 그녀의 공연을 바라보는 관객들이 '아, 김민지가 내는 소리는 이것이 다르다'라는 생각이 들 만큼, 자신의 첼로로 그려놓는 풍경이 첼리스트 김민지만의 색깔이 드러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김민지는 필라델피아 킴머, 트리니티 센터, 보스턴의 조단 홈, 가드너 박물관 등 여러 곳에서 독주 및 협연 무대를 가졌고, 시카고 마이러 헤스 콘서트 시리즈, WMET 시카고 라디오에 라이브 리사이틀이 방송되기도 했다. 해든필 심포니, 허드슨 밸리 심포니, 마린 심포니, KBS 교향악단, 서울시향 등 국내외 주요 오케스트라에 초청되어 솔리스트로서의 빈틈없는 행보를 거듭하고 있는 그녀는 예술의전당이 주최한 베토벤 전곡시리즈에 발탁되어 김대진이 이끄는 수원시향과 협연하였고,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한동일과 베토벤-브람스 전곡시리즈, 차세대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피아니스트 김태형과의 전국 투어 리사이틀을 성공적으로 완주하는 등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쳤다. 현재 금호 체임버 뮤직 소사이어티와 금호 아시아나 솔로이스츠, 앙상블오푸스와 첼로 앙상블 '첼리스타'의 멤버이기도 한 김민지는 세계적인 지휘자 로린마젤이 이끄는 스페인 레이나 소피아 오케스트라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부수석으로 4년 가까이 활동한 바 있다.

 

"스페인에서의 생활은 함께 어우러지는 음악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된 시기였던 것 같아요. 오케스트라 연주는 솔리스트로서는 느낄 수 없는 다른 감동이 있었고, 음악을 보다 풍요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는 여유도 갖게 되었죠. 저는 무조건 체임버 뮤직이나 오케스트라 음악은 기본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같은 작품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연주하게 되면 표현되는 음악이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그것이 매우 즐겁고 흥미로워요. 마치 음악으로 대화를 하며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것 같아 굉장히 기분이 좋아요."

 

첼리스트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김민지는 계명대학교 관현악과 교수이기도 하며, 두 돌이 지난 쌍둥이 두 딸의 엄마이기도 하다. 가정과 사회에서의 역할이 많아지다 보니, 연습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잠을 줄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보통 일찍 일어나 새벽에 연습실을 찾는다. 요즘 그녀는 생각이 많다. 앞으로 10년, 20년 후 자신의 음악적 깊이를 어떻게 추구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연주자로서 어떤 목표를 갖고 살아갈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스스로 자문해본다. 지금은 비록 명확하게 정의를 내릴 수는 없지만, 계속 그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매순간 최선을 다해 연주하고, 관객들과 소통하는 음악인이 되기 위해 걸음걸음 내딛는 발자국마다 진정성을 더할 것이지만, 저의 음악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얼마만큼 깊이 있게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거듭 고민을 해나갈 것 같아요."

 

 

스승인 로렌스 레서는 항상 그녀에게 '첼로를 잘하는 첼리스트가 되려고 하지 말고, 음악인이 돼라. 음악을 사랑하는 음악인이 되어 좋은 음악을 하려고 노력해라. 유명해지고, 경제적인 부를 얻는 것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 네가 좋은 음악인이 되면 그런 것들은 부수적으로 따라오게 될 것이니, 사회적인 명성을 얻기 위해 조급해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음악인이 돼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저는 그날 로렌스 레서 스승이 해주신 말씀이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첼리스트 김민지는 두드러진 행보를 보여주는 젊은 연주가들과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는 선배 음악가들 사이에서 균형적인 흐름이 이어질 수 있도록 음악적인 소통을 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서있다. 첼리스트로서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적 깊이에 대해 늘 겸손한 자세로 돌아보지만, 우리는 이미 그녀가 세상을 향해 수놓은 첼로 선율에 따라 김민지의 음악에 마음이 머물러 있다. 누구보다도 강렬한 카리스마로 자신만의 연주 색채를 그려놓는 김민지의 음악세계는 매일이 새롭고, 다가오는 내일이 더욱 기대된다.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그녀가 열어갈 독창적인 연주 세계를 다시 한 번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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