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아름다움/영화

셔터 아일랜드, 말러의 피아노 4중주에 스며든 고통스러운 기억과 죄책감

난짬뽕 2023. 4. 19.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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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 아일랜드 포스터

얼마 전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함께 호흡한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 소식을 듣고는, 영화 <셔터 아일랜드>가 떠올랐다. 셔터 아일랜드(Shutter Island)는 <갱스 오브 뉴욕>을 시작으로 <에비에이터>와 <디파티드>에 이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디카프리오가 함께 호흡을 맞춘 네 번째 작품이었다. 

 

셔터 아일랜드
  • 감독 : 마틴 스콜세지
  • 배우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테디 다니엘스 역), 마크 러팔로(척 아울 역), 벤 킹슬리(닥터 존 코리 역)
  • 개봉 : 2010년
  • 장르 : 미스터리, 드라마, 스릴러
  • 국가 : 미국
  • 등급 : 15세이상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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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작가 데니스 루헤인의 원작 소설인 <셔터 아일랜드(한제: 살인자들의 섬)>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미스터리와 정신착란 상태의 공포와 분노를 극대화하기 위해 독창적인 촬영기법을 고민했고, 안개를 통해 환각을 유발하는 장면들을 묘사했다고 한다. 

 

강한 비바람 등의 궂은 날씨는 영화의 흐름에 있어 극적 효과를 자아내기에 충분했고, 바닷가에서 쥐가 나오는 장면은 너무 징그러웠는데 실제로 쥐 100마리를 풀어놓고 촬영했다고 한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결말의 반전 못지않게 처음부터 전개되는 많은 복선과 암시가 긴장감을 풀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현실과 악몽의 마음속 지옥

 

남북 전쟁 당시 요새로 사용하던 셔터 아일랜드는 보스턴 인근의 외딴섬으로 이곳에 위치한 정신병원은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정신병자들을 모아 놓은 시설로 탈출이 불가능하다. 배가 닿는 단 한 군데의 선착장을 제외하고는 섬의 대부분이 험한 바위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 

 

어느 날 자식 셋을 죽인 죄로 이곳에 수용되어 있던 레이철이라는 여자가 이상한 쪽지를 남기고 감쪽같이 사라진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연방보안관인 테디 다니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그의 동료 척 아울(마크 러팔로)이 셔터 아일랜드에 들어온다. 

 

테디는 수사를 위해 의사와 간호사, 병원 관계자들을 심문하지만 수사는 전혀 진척되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폭풍이 몰아쳐 테디와 척은 섬에 고립되고, 테디는 심한 편두통과 구토, 환상과 악몽에 시달리게 된다. 또한 아내와 아이를 모두 잃은 고통스러운 과거로 인해 시시때때로 환상을 보게 되고, 환각 증세를 보이며 폭력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브람스인가요?"

"말러야."

탈옥한 여성 수감자의 정신 상태를 묻기 위해 병원장 콜리 박사의 사무실에 들어선 척의 질문에 테디가 짧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원래 테니스 루헤인의 원작 소설에서는 병원장 콜리의 답변이었는데, 영화에서는 테디의 대사가 되었다. 그때 축음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피아노와 현악기의 실내악. 바로 구스타프 말러의 '피아노 사중주'이다. 

말러의 피아노 사중주, 트라우마를 대변하다

 

이 음악은 테디가 떠올리는 참혹한 악몽 같은 장면에서도 흐른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테디의 부대는 나치가 처음으로 건립한 강제 수용소인 다카우 수용소에 있는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 그곳에 도착하는데, 테디는 자살을 기도한 독일군 장교가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말러의 이 음악을 들으며 자기 머리에 방아쇠를 당겼지만 숨이 끊어지지 않은 장교는 고통스러워하며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권총을 다시 잡으려 한다. 그러나 테디는 발로 그 총을 치워버린다. 그렇게 오랫동안 독일군 장교는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어간다.  턴테이블에서 흘러나오는 말러의 피아노 사중주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이 음악은 음산하고 암울한 셔터 아일랜드의 배경과도 잘 어울리며, 과거 속에 갇혀 있는 테디의 혼란스러운 정신세계를 보다 효과적으로 극대화시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하다. 현실과 과거, 그 속에서의 환각과 악몽, 죽음, 살인 등으로 인한 긴장과 공포감을 음악을 통해 한 템포 멈춰 서게 한다. 

크리스토프 펜데레츠키의 교향곡 3번

 

사실 영화 셔터 아일랜드는 현대음악의 종합선물세트라고 불릴 만큼, 20세기 음악사를 이끌어갔던 현대음악 대가들의 작품이 많이 쓰였다. 테디와 척이 배를 타고 셔터 아일랜드로 향하는 장면에서는 폴란드 작곡가 크리스토프 펜데레츠키의 '교향곡 3번'이 배경음악으로 나온다. 

 

펜데레츠키의 '교향곡 3번 4악장 파사칼리아'는 음산하면서도 무서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있어 그 효과가 매우 강렬하다는 생각이 든다. 반복되는 동음 모티브가 인상적이고, 트롬본과 튜바의 음은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데 최고의 역할을 하고 있어 음악을 듣고만 있어도 불안감이 몰려오는 기분이 든다. 

 

크리스토프 펜데레츠키는 1991년 우리나라 정부의 위촉으로 광복의 의미를 나타내는 작품인 '교향곡 제5번'을 작곡하기도 했다. 셔터 아일랜드에서는 이밖에도 리게티의 '론타노'와 알프레드 슈니트케의 '첼로와 콘트라바스를 위한 송가' 음악도 만날 수 있다. 

셔터 아일랜드는 현대음악이 불어넣어 준 효과가 매우 큰데, 펜데레츠키와 말러의 음악은 꼭 한번 다시 들어봐도 좋은 감상이 될 것 같다. 펜데레츠키의 '교향곡 3번 4악장 파사칼리아'와 말러의 '피아노 4중주'는 현대음악이 주는 색다른 분위기를 선사해 줄 것이다. 

구스타프 말러가 '피아노 4중주'를 작곡한 것은 1876년, 그의 나이 16세 때였다고 한다. 이 곡은 피아노와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의 악기로 연주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피아노 연주를 좋아해서인지, 이 곡을 듣고 있으면 현악기 세 대가 채워주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피아노 선율이 받쳐주는 느낌이 들어 좋다. 

 

빈 음악원에 다니던 시절, 말러는 브람스와 슈베르트, 바그너와 브루크너의 작품을 좋아했다고 한다. 본래 네 개의 악장을 모두 쓸 생각이었지만, 그는 1악장만 쓰고는 작곡을 중단한다. 하지만 이 음악 안에는 고전적인 형식이나 낭만적인 어울림이 집약적으로 모두 스며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 음악가의 성공을 꿈꾸던 말러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발목이 잡혔고, 어린 나이에 가족을 잃는 상실감과 결혼 후 아이들을 먼저 보낸 아픔까지 모두 자신의 탓으로 여겼다.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지 못했고, 전쟁과 죽음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던 테디의 트라우마 위에 말러의 음악의 덧씌워진 것은 아마도 우연이 아닌 것 같다. 

 

합리적인 반항은 현실부정이 되고,
정당한 공포는 편집증이 돼.
생존본능은 방어기제가 되고요.


상처는 괴물을 만들죠.
당신은 상처를 입었고요.
당신 안에 괴물을 봤다면,
그만 멈춰야 합니다. 

 

연방 보안관이 아닌 셔터 아일랜드에 수감된 67번째 환자. 자신의 아내를 죽인 가장 위험한 환자의 정신분열증, 그를 둘러싼 거대한 연극. 그리고 전두엽 절제술. 

 

뭐가 더 최악일까?
괴물로 사는 것과
선량한 사람으로 죽는 것 중에서 말이야.

 

크고 작은 암시와 반전, 그 가운데 인간의 트라우마가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준 영화 <셔터 아일랜드>는 몰입감이 있는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디카프리오를 비롯한 모든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고, 현실과 환각 사이의 간극을 꽉 채워준 펜데레츠키와 말러의 음악 역시 좋았다. 셔터 아일랜드를 음습하고 있는 그 음악들이 다시금 귓가에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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