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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브람스 교향곡 3번

난짬뽕 2023. 5. 9.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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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 hu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1959년에 출간된 프랑스 출신의 작가인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이다. 자유분방한 오래된 연인 로제에 익숙해져 있는 서른아홉의 실내장식가 폴과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 14살 연하의 청년 시몽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구속을 싫어하는 연인 로제는 마음이 내킬 때만 폴을 만나고, 때로는 젊은 다른 사람과 즐거움을 나누기도 한다. 그로 인해 폴은 외로움을 느끼지만 로제를 떠날 용기도 내지 못한다. 로제와 폴의 관계를 알고 있지만, 적극적인 애정 표현을 하며 다가오는 시몽의 태도가 폴은 부담스러우면서도 때로는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p.46 (시몽이 폴에게 한 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로제와 시몽의 전혀 다른 색채를 가진 두 사랑 앞에서 마음의 파도를 일으키는 폴의 심리를 바탕으로 전개된다. 익숙한 사이인 로제와 새롭게 다가오는 시몽 사이에서  갖게 되는 폴의 모호한 감정들. 이 책은 세 사람의 사랑방식을 그려내고 있으면서도, 폴 혼자만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때로는 폴과 시몽 혹은 폴과 로제의 내용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느껴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가 아직도 갖고 있기는 할까? p.60

 

아직 뭐라고 대답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아마도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 않은것 같아요."라고 대답하리라. 자신이 그 연주회에 가려는 것인지 아닌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p.61

 

옮긴이 김남주의 작품해설에 따르면, 사강의 작품이 강조하는 것은 사랑의 영원성이 아니라 덧없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사랑을 믿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농담하세요? 제가 믿는 건 열정이에요. 그 이외엔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사랑은 이 년 이상 안 갑니다. 좋아요, 삼 년이라고 해 두죠."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프랑수아즈 사강


오래전 읽은 이 책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2020년 박은빈 배우가 출연했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드라마 때문이었다. 바이올린을 사랑하는 음대생과 국내파 피아니스트와의 이야기를 다룬 그 드라마를 챙겨보지는 못했지만, 단지 그 드라마의 제목 때문에 나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이 책이 생각났던 것 같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지은이 : 프랑수와즈 사강
  • 옮긴이 : 김남주
  • 펴낸곳 : (주)민음사 
  • 1판 1쇄 펴냄 : 2008년 5월 2일
  • 세계문학전집 179

 

의도된 것인지, 아니면 프랑수아즈 사강의 바람을 알지 못했던 것인지 드라마 제목은 물음표가 붙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이다. 그러나 첫 작품이 나온 지 오 년 만인 스물네 살의 나이에 발표한 이 책을 두고, 사강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뒤에 붙는 문장 부호가 물음표가 아닌 점 세 개로 이루어진 말줄임표로 끝나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처럼. 

 

골루아즈 담배와 커피 한 잔이 아침 식사였고, 위스키 잔을 줄곧 손에서 놓지 않았으며, 문턱이 닳도록 카지노를 드나들며 인세 전액을 탕진했으며, 재규어와 애시튼 마틴, 페라리, 마세라티를 바꿔 가며 속력을 즐기다가 차가 전복되는 교통사고를 당해 삼 일간 의식 불명 상태에 놓이기도 했던 사강의 삶을 가리켜 사람들은 낭비와 알코올, 연애와 속도와 도박, 그리고 약물에 중독된 그 자체였다고도 말한다. 

 

1954년 소로본 대학교에 입학 허가를 받았으나 첫해 시험에서 낙제했고, 여름에는 요트 사고를 당해 침대에서 쓴 소설인 <슬픔이여 안녕>이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그해 비평가 상을 받기도 했다. 이 작품은 1958년 오토 프레민저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1995년에는 코카인 소지 혐의로 기소되었는데, 그녀는 프랑스의 한 풍자 쇼에 출연하여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며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작가 김영하 역시 이 말이 마음에 와닿았던 것일까. 그가 발표한 장편소설의 제목과도 같다. 

 

"십 년 뒤에도 그가 여전히 나를 사랑할까?" p.146

 

프랑수아즈 사강의 이 소설을 토대로 1961년 아나톨 리트박 감독의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프랑스와 미국의 합작영화로, 프랑스에서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미국에서는 <굿바이 어게인>,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이수>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다. 세계적인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먼 주연으로, 이브 몽탕과 앤서니 퍼킨스가 함께 호흡을 맞췄고 작가인 사강도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스물다섯 살의 시몽은 한눈에 반한 서른아홉 살의 폴에게 브람스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며 데이트 신청을 한다. 그리고는 얼마 후에 두 사람은 브람스의 교향곡 연주회에 함께 간다. 영화의 OST인 브람스의 <교향곡 3번> 3악장의 선율이 마음을 촉촉이 젖신다. 그 어느 누구보다도 음악 이외의 다양한 콘텐츠를 파생시킨 브람스의 삶도 함께 돌아보게 된다. 

 

프랑수와즈 사강은 2004년 노르망디의 한 병원에서 심장과 폐질환으로 사망한다. 너무나도 솔직하고 열정적이었던 그녀는 떠나갔지만, 여전히 많은 독자들은 사강의 작품들을 다시 꺼내보곤 한다. 프랑수와즈 사강은 브람스의 마음을 공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비슷하지 않을 것 같은 사강과 브람스는 닮아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의 짙은 고독과 슬픔이 사강은 문학으로, 브람스는 음악으로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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