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을 지워드립니다: 특수청소 전문회사 데드모닝
- 지은이: 마에카와 호마레
- 옮긴이: 이수은
- 초판 1쇄 발행: 2022년 10월 24일
- 펴낸곳: 라곰
전날의 술기운을 푸는 것은 해장술로, 운동으로 인한 근육통은 다시 운동으로,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부터 치유받는다고 했던가.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읽으면서 나는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감정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것은 '죽음'이라는 문제에 대한 맞닥뜨림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을 보여주고 말하고 있는 그 책의 전달 방식이 나와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으로 멍든 마음은 역시 또 다른 책으로 치유될 수 있었다. <죽은 자의 집 청소>와 함께 빌려왔던 <흔적을 지워드립니다 - 특수청소 전문회사 데드모닝>은 전자로 인한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던 나의 마음이 나도 모르게 치유되는 기분이 들었다. 지은이 마에카와 호마레의 글이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이수은 옮긴이의 번역이 좋았는지, 군더더기 없는 담백한 문체가 오히려 마음에 들어왔다.
<흔적을 지워드립니다 - 특수청소 전문회사 데드모닝>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사이에 모두 다섯 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생선 초밥, 흙 묻은 등산화, 반짝이는 전신 거울, Special Blend Coffee, 딸기 생크림 케이크'라는 부제가 붙은 사연들은 모두 서로 다른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죽음 그 자체에 머물러 있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후의 남겨진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상처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그 아픔이 영원히 사라질 수는 없겠지만, 현재를 살아가며 최소한 위로받는 과정이 읽는 내내 공감이 갔다.
흔적을 지워드립니다, 작가 마에카와 호마레
간호사로 일하며 틈틈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쓴 첫 작품 <흔적을 지워드립니다 - 특수청소 전문회사 데드모닝>으로 제7회 포플러사 소설신인상을 수상했다.
흔적을 지워드립니다, 옮긴이 이수은
한국외국어 대학교를 졸업했다. 대학시절부터 다양한 통번역을 경험하며 번역가의 꿈을 키웠다.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 출판기획 및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수상한 목욕탕> <혼자인 밤에 당신과 나누고 싶은 10가지 이야기> 등이 있다.
흔적을 지워드립니다, 줄거리
20대 청년 아사이는 경쟁사회로 나가는 것이 두려워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생활한다. 할머니의 장례식 후 식당에서 우연히 특수청소 전문회사 데드모닝의 대표 사사가와를 만나게 되고, 그의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한집에 살면서도 서로를 미워했던 형제, 남편과 싸우고 화해하지 못한 채 떠나보낸 후 남편의 마음을 알게 된 아내, 케이크를 주문해서 둘만의 파티를 열고 죽음을 선택한 모녀, 홀로 죽음을 맞이한 할아버지, 아들을 먼저 보낸 엄마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기억에 남는 문장들
1. 생선초밥
외부 계단으로 내려가 유품이 담긴 봉투를 땅바닥에 내던지고 크게 기지개를 켰다. "너 유품을 왜 집어던지고 그래?" 가에데는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갑자기 내 멱살을 잡았다. "너 말이야. 여태까지 진지하게 무슨 일에 임해본 적도 없고, 다른 사람한테 진지해져 본 적도 없지?"
"청소가 끝나면, 이 방에 살던 누군가의 흔적은 사라지고 다른 누군가가 살게 되지." "뭔가 허무하네요." "그런가? 계속 반복되는 일이야. 난 이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몰라. 하지만 이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긴 삶의 흔적과 죽음만은 기억할 수 있지." "누군가의 일부야. 조심히 들어."
"익숙해져요?" "익숙해진다기보다 내성이 생겨." "전 힘들 수도 있겠네요~~~. 사람이 죽더라도 마음은 남는다고 하잖아요. 희한한 미신 같은 건 잘 안 믿는데 뭔지 좀 알 것 같더라고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죽은 후에 그 사람이 아직도 존재하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하나."
2. 흙 묻은 등산화
"이 일을 하다 보면 매년 얼굴을 보고 생일을 축하하는 게 아주 특별한 일이란 생각이 들거든. 생일은 참 멋지잖아. 한해를 제대로 살았다는 증거니까."
"저, 아무것도 몰랐어요~~~. 위로가 되는 좋은 말을 건넸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상처를 드렸어요. 천국이니, 시간이 약이라느니, 힘내라느니, 기운 차리라느니 그럴싸한 말만~~~. 어머님을 진심으로 위해서가 아니라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했어요~~~." "좋은 말이란 뭘까?"
"나는 그런 것 같아. 처음부터 좋은 말은 존재하지 않아. 그저 좋게 들리는 말만 있을 뿐이지. 그렇지만 말이야. 아주 서툰 말이든 다그치는 말이든 언젠가 생각났을 때 가슴을 따뜻하게 만든다면 그건 정말 좋은 말이거든. 모든 말은 좋은 말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어. 그러니까 오늘 아사이가 어머님에게 건넨 말들도 언젠가 정말로 좋은 말이 될지도 몰라."
3. 반짝이는 전신 거울
"누군가가 아끼는 걸 나도 똑같이 소중하게 다루는 건, 의외로 어려운 일이야." "고독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스스로 그랬는지,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는지는 본인에게 물어봐야겠지. 근데 혼자도 편해. 나만 생각하면 되고, 누가 싫은 소리 할 일도 없으니까. 이 방은 동생분이 세상에서 가장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장소였는지도 몰라."
"결국은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진짜 속마음은 평생 모르는 거야. 상대방은 내가 아니니까. 마음속까지 이해할 수는 없어. 머릿속도 들여다볼 수 없지. 그러니까 우리는 마음이 서로 엇갈리고, 때때로 슬픈 결말을 맞는 거야. 난 항상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오늘 같은 일이 있어도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우리는 원래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안타까운 존재니까."
"하긴 그렇네요.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으니까~~~. 평생 이해하지 못하려나."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확실히 우리는 다른 사람의 속마음 같은 건 들여다볼 수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사사가와의 말처럼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건 거짓말이야. 사람은 서로 이해할 수 있어. 말이나 행동이 아니더라도 다른 무언가로 말이야. "
4. Special Blend Coffee
"나는 말이야, 이 일을 시작하고 한 번도 쓰레기를 운반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누군가의 단 하나밖에 없는 삶의 단편을 운반한다고 생각하지. 아니면 너무 허무하잖아.?"
5. 딸기 생크림 케이크
"열심히 살면 해파리도 뼈를 만난대." "옛날 속담이야. 해파리의 몸은 거의 수분이잖아. 그래서 물컹물컹하거든. 하지만 해파리도 오래 살면 언젠가 뼈를 만나서 뼈가 있는 해파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말인가 봐. 오래 살면 큰 행운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뜻." "한마디로 살아 있으면 되는 거야. 살아가다 보면 너처럼 현재 막막한 사람도 언젠가 소중한 무언가를 만날 수 있을지 몰라."
"죽음에 대해 그렇게 굳센 의지가 있었다면, 그 마음으로 조금만 더 살지~~~." "그러면 아무도 마지막 인사를 못 하잖아. 남은 흔적을 지우면서 며칠, 적어도 몇 시간이라도 기억하자. 이 방에 또렷하게 존재했던 누군가의 삶을." "남은 흔적은 지울 수 있죠. 하지만 누군가 살았던 나날은 지울 수 없어요."
"내가 이 일을 시작한 건 죽음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야." "그런데 말이야. 끝내 알 수 없었어. 딱 하나 알게 된 완전히 똑같은 죽음은 없다는 거야. 죽음을 맞이한 상황도 다르고, 유족의 반응도 모두 달라. 슬픔에 눈물을 흘리는 유족도 있고, 대놓고 좋아하는 유족도 있어. 앞에 있는 유품밖에 안 보는 사람들도 많이 봤고."
"어째서 똑같은 죽음은 없을까?" "똑같은 방식으로 살 수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모든 인생에는 각자의 고뇌가 있고, 고독이 있고, 슬픔이 있고, 또 행복이 있으니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결국 죽음은 그냥 '점'인 거야. 반대로 이 세상에 탄생한 순간도 그냥 '점'인 거지. 중요한 건 '점'과 '점'을 묶은 '선'이야. 즉 살아 있는 순간을 하나하나 거듭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야."
흔적을 지워드립니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
- 인물들의 대화에서 예의가 느껴졌다.
- 무거운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문체가 간결하고 감정이 실리지 않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 특수청소 회사 데드모닝을 운영하는 사사가와는 마음이 따듯한 사람이다.
- 남겨진 사람이 떠나간 사람으로 인해 오히려 치유받는다.
- 슬픔을 넘어 따뜻한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소설이다.
-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법을 알려주는 작품이다.
함께 나누고 싶은 그 대목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를 간병하는 딸의 이야기. 몸이 마비되고, 갑자기 화를 내거나 울어버리기도 하며, 딸에게 '가짜 딸'이라고 화를 내기도 했던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나온 신문과 전단 몇 장. 거기에 지저분한 글씨로 쓰여 있는 '생강, 표고버섯, 닭고기, 소금'이라는 글씨. 그것은 어린 시절 엄마가 딸을 위해 만들어주던 수프의 레시피였다.
"엄마는 후유증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내 표정을 유심히 봤던 것 같아. 아마 나는 엄마와 마주칠 때면 늘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을 거야. 그래서 내가 감기에 걸렸다고 착각해서 수프 레시피를 남겨준 거라고 생각해. 자주 쓰는 손이 마비됐으면서 왼손으로 그런 마음을 남겨줬으니까. 힘들어하는 나를 걱정해서~~~. 그 지저분한 글씨를 봤을 때, 장례식에서도 울지 못했는데 사사가와 군 앞에서 울고 말았어. 엄마는 계속 내게 자상한 엄마였구나, 그때 깨달았어."
아직 행복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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