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까지 많은 분야에서 '공감'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인간이 지녀야 할 덕목 중에 공감능력은 곧 도덕심이나 이타심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고, 긍정적인 동기 유발이나 좀 더 나은 환경으로 나아가기 위한 뒷받침이 된다고도 생각해 왔다.
그러나 세계적인 심리학자인 폴 블룸 예일대 교수는 이 책 <공감의 배신>을 통해 "더 선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면, 공감하지 마라!"며 공감 반대 선언을 한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곧 언론과 학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폴 블룸 교수는 "공감은 형편없는 도덕 지침"이라면서, 오히려 공감이 없을 때 더욱 공평하고 공정한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극단주의나 인종차별주의로 빠질 수 있는 위험 요소를 지니고 있으며, 비합리적이며 보이지 않는 무서운 폭력을 유도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공감의 배신
- 지은이: 폴 블룸
- 옮긴이: 이은진
- 발행처: (주)시공사
- 초판 1쇄 발행일: 2019년 8월 30일
공감능력에는 장점이 있다. 우리가 예술과 소설, 스포츠를 보며 즐거워할 수 있는 것도 공감능력 덕분이고,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도 공감능력의 공이 크다. 때로 공감능력은 선을 행하도록 자극하는 역할도 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공감은 형편없는 도덕 지침이다. 공감은 어리석은 판단에 근거할 때가 많고, 무관심과 잔인함을 유발하기도 한다. 비이성적이고 부당한 정치적 결정을 이끌어내기도 하고, 의사와 환자의 관계처럼 중요한 관계를 좀먹고, 친구나 부모, 남편, 아내로서의 역할을 더 어렵게 만든다.
나는 공감에 반대한다. 그리고 이 책을 쓰는 목적 가운데 하나는 나와 같이 공감에 반대하도록 여러분을 설득하는 것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심리학, 신경과학, 정치학을 넘나드는 광범위한 분석과 논의를 통해 폴 블룸이 말하는 공감 반대 선언의 핵심은 무엇일까. <공감의 배신>은 모두 여섯 개의 장과 두 개의 막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에서는 공감에 대한 공격이 펼쳐지며, 2장과 3장에서는 심리학과 신경과학을 토대로 공감이 형편없는 도덕 지침인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
4장에서는 공감과 친밀감에 대해 다루며, 5장에서는 공감능력이 부족하면 더 나쁜 인간이 된다는 견해를 회의적인 시각에서 살펴보고 있으며, 마지막 6장에서는 이성에 바탕을 둔 인간의 추론 능력이 얼마나 많은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 논증한다.
<공감의 배신>, 생각하게 하는 책 속의 문장들
수많은 사람이 연루된 사건을 접했을 때 공감이 조금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도 문제지만, 그중 한 사람에게만 공감한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다. 공감은 많은 사람 중에서 한 사람에게 마음이 흔들리게 할 수 있다. 정부나 개인들이 수백만 명 또는 수십억 명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건보다 우물에 빠진 어린아이 1명에게 더 관심을 쏟는 이유도 이렇게 왜곡된 '도덕적 수학' 때문이다. 몇몇 사람의 고통에 대한 격렬한 분노가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p 52
우리가 일상적인 관계에서 서로에게 친절하게 대하려면, 공감능력을 발휘하는 것보다 자제력과 사고력을 발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특정인에 대한 공감보다는 보편적인 인간에 대한 연민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 p 54
공감 반응을 포함하여 우리가 타인에게 보이는 반응에는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편견과 선호, 판단이 반영된다. 이것은 공감이 우리를 꼭 도덕적인 사람이 되게 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것은 좀 더 복잡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여러분이 어떤 인물에게 공감하느냐 못 하느냐는 여러분이 어떤 사람을 걱정하고 인정하고 중요하게 여기는가에 관한 사전 결정에 달려 있고, 이런 결정들은 도덕적 선택이기 때문이다. p 99
우리는 타인의 감정을 거울처럼 비추고 자기도 모르게 그 감정에 젖어든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며 느끼는 고통은 그 사람이 느끼는 실제 고통과 다르다. 또한 내가 그 사람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느냐에 따라 공감의 수준이 달라진다. p 103
공감능력이 높다고 선량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고, 공감능력이 낮다고 악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앞으로 우리는 연민이나 염려처럼 상대방과 조금 더 거리를 두는 감정들이 선량함과 관계가 있을 수 있고, 연민 부족과 타인에 대한 관심 부족, 자신의 욕구를 제어하지 못하는 무능이 사악함과 더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살펴볼 것이다. p 117-118
공감 정치의 대가는 엄청나다. 정부가 신중한 장기 정책을 실행하지 못하는 원인은 단기적인 해결책을 선호하는 민주정치의 인센티브 제도와 강력한 돈의 영양력에서 찾을 수 있지만, 공감 정치에도 책임이 있다. 한 국가의 시민들이 우물에 빠진 아이의 소식에는 눈을 떼지 못하면서 기후 변화에는 무관심한 이유는 공감 때문이다. 우리가 종종 잔혹한 법을 제정하고 끔찍한 전쟁에 뛰어드는 것도 공감 때문이다. 소수의 고통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우리의 감정이 다수에게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p 172
공감을 생각할 때는 분노와 비교하는 것이 유용하다. 이 둘은 공통점이 많다. 둘 다 어린 시절에 나타나는 보편적인 반응이다. 둘 다 사회적이고, 주로 타인에게 맞추어져 있고, 죽은 존재나 생기 없는 경험에 의해 유발되는 두려움이나 역겨움 같은 감정과는 다르다. 무엇보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과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둘 다 도덕적이다. 공감은 종종 타인에게 친절한 행동을 하도록 유도할 수 있고, 분노는 종종 처벌과 같은 타인의 행동을 자극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둘은 서로 관련이 있을 수 있다. 공감은 분노로 이어질 수 있다. 한 사람을 향한 공감은 그 사람에게 잔인하게 대한 사람들에게 분노하도록 자극할 수 있다. p 270
<공감의 배신> 저자 폴 블룸
예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발달심리학, 언어심리학, 사회적 추론, 도덕성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전문가이다. 2003년 철학과 심리학의 뛰어난 학제간 연구를 인정받아 스탠턴 상을 받았고, 2004년 예일대학교에서 우수한 교수에게 수여하는 렉스 힉슨 상을 받았다. 2017년에는 아이들에게서 어떻게 도덕성이 발달되는지에 대한 연구로 클라우스 J. 제이콥스 리서치 상을 받았다. 사이언스, 네이처, 뉴욕 타임스, 뉴요커 등에 왕성한 기고 활동을 했으며, 저서로는 <선악의 진화 심리학>, <우리는 왜 빠져드는가?>, <심리학 프리즘>(공저), <데카르트의 아기> 등이 있다.
폴 블룸 교수는 아직도 공감이 선하다고 믿는 사람들을 향해 강력한 어조로 "더 선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면, 공감하지 마라!"라고 말한다. 그가 이토록 공감에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감은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곳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와도 같다고 비유한다. 물론 빛을 비춘다는 긍정적인 효과는 있지만, 자신이 관심이 있는 곳에만 빛을 비춰 그 면적이 좁다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도움의 효과가 크게 발휘될 대상을 제치고 어느 소수에게만 관심이 집중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공감보다 더욱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폴 블룸 교수가 말하는 그것은 바로 '이성'이다. 때로는 차분하게, 때로는 차가운 이성이야말로 객관적이고 공정한 도덕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 공감을 배제했을 때 오히려 날카로운 통찰력과 판단력을 실행에 옮길 수 있다고 강조한다.
타인의 입장에 서기, 공감 해부학, 선을 행한다는 것, 공감의 정치학, 친밀한 관계에서의 공감, 공감은 도덕의 근간인가, 폭력과 잔인함, 이성의 시대 등 모든 챕터의 내용이 지루하지 않았다. 공감을 잘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너무 자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또한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폴 블룸이 말하고자 하는 '공감의 배신'에 대한 내용에 대해 되짚어보아도 좋을 듯싶다. 아마존 베스트셀러인 이 책은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었지만 지루하지 않게 집중해서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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