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아름다움/음악

다시 낭만을 찾아서, 비올리스트 오순화

난짬뽕 2021. 1. 23. 08:15
728x90
반응형

여러분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던 그 시절의 낭만이 아직도 옆에 머물러 있으신가요? 2015년 7월 오순화 교수님 자택에서 인사드렸을 때, 비올리스트로서 교수님은 우리들이 잃어가고 있는 '낭만'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들도 모르게 놓쳐버린 진실된 마음을 잊고 지내신 것은 아닌지요? 진정성 있는 비올라의 울림을 통해, 잠시 놓쳐버린 우리들의 낭만을 다시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다시 낭만을 찾아서

비올리스트 오순화

 

 

비올라 연주가로서 마음에 품은 꿈은 오직 하나.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비올라의 매력을 선사하고, 음악을 통해 따뜻함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 음악가로서의 가장 큰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비올라 전문지인 계간 <올라 비올라>를 창간하고, 국내 유일의 비올라 연주단체 '올라 비올라 사운드'를 이끌게 된 것 역시 이러한 소망 때문이었다. 비올리스트의 길을 걸어온 지난 30년간의 발자취를 디딤돌 삼아, 다시 오순화의 비올라 선율이 꽃피운다.

글 엄익순

 

 

열아홉 살의 첫사랑, 비올라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한 바이올린을 단숨에 내려놓을 만큼 비올라의 깊은 선율에 매료되었다. 비올라에 손이 닿는 순간, 마치 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부드러운 목소리를 지닌 듯한 따듯한 음색이 자꾸만 가슴에서 메아리가 되어 울렸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이제 막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막내 동생을 매일 동네 교습소에 데려다주면서도, 공부가 재미있어 음악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레슨을 받고 있는 동생을 지켜보던 중, 문득 악기가 신기해 보였다. 그날 이후에도 어김없이 동생을 데리고 교습소에 갔지만, 이제는 동생을 앉혀놓고 레슨은 언니가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바이올린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1977년 전국 학생음악 경연대회 특상과 서울교대 콩쿠르 1위를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내었다. 

서울예고 1학년 재학 중 미국으로 건너간 후 매년 참가한 메도우 마운튼 섬머스쿨에서 그녀를 지켜본 마가렛 파디와 폴 독터 교수가 '정말로 너와 잘 어울리는 악기다'라며 비올라를 건네게 된다. 열아홉 살, 유학을 떠난 지 2년 만의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은사의 통찰력으로 진지하게 대면하게 된 비올라의 세계. 바이올린 연주에 있어서도 탁월했던 그녀가 비올라를 선택했을 때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만류하였지만, 이미 오순화의 마음에는 비올라가 들어와 있었다.

 

사진협조 스테이지원

 

줄리아드 프리컬리지를 거쳐 줄리아드 음대와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동안, 뉴욕 그레이트 넥 영아티스트 콩쿠르(1980년)에서 1위를 차지했고, 줄리아드 바흐 콩쿠르와 베를리오즈 콩쿠르(1985년)에서도 우승하며 비올리스트로서 세계 음악계의 시선을 한몸에 받기에 이른다. 국내는 물론 카네기홀을 비롯하여 링컨센터와 독일 그라페르필 등 해외 무대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아왔던 오순화는 비올라를 선택한 것에 대해 지금까지 단 한 번의 후회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찾아가는 음악회'를 실천하다

1993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오순화는 1999년 비올라 전문 계간지 <올라 비올라>를 발행한다. 비올리스트들을 찾아 직접 인터뷰도 하고, 비올라와 관련된 자료와 정보들도 알차게 소개했다.

"1985년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비올라'라는 악기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어요. 인간의 가슴에 파고드는 감성적인 음색을 지니고 있는 비올라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널리 알리고 싶었죠. 비올라 공연 정보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또 비올라 악기의 올바른 이해와 홍보를 위해 잡지책을 만든 거죠."

 

그해 12월에는 국내 유일의 비올라 연주단체인 '올라 비올라 사운드'를 창단한다. 계간지만으로는 비올라의 매력을 모두 담아낼 수 없다는 것. 궁극적으로 음악은 소리로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올라'는 스페인어로 '안녕'이라는 뜻. 대중들에게 비올라의 다양한 음색과 레퍼토리를 소개하고, 비올라를 통하여 클래식 음악을 다정한 친구처럼 좀 더 쉽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로 다가가고자 하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사진협조 스테이지원

 

오디션을 통해 젊은 엘리트 비올리스트들을 선발하여 매년 연주 무대를 선보였다.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금호아트홀, LG아트센터, 영산아트홀 등에서 정기연주회를 통해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올라 비올라'만의 사운드로 승화시켜 소개했다. 그들의 무대는 화려한 곳에서만 펼쳐지는 것은 아니었다. 지역아동센터를 비롯하여 사회복지시설과 병원, 보육원 등 소외된 이웃을 찾아가는 자선음악회를 수차례 선보였으며, 대학교와 미술관 등 다양한 무대에서 비올라를 통한 클래식의 저변 확대에 그 역량을 보여 왔다. 

 

문화 나눔뿐만 아니라, 세계 유수의 무대에서도 그들의 인기는 대단하다. 단일악기, 특히 실내악의 화음악기인 비올라만의 구성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유럽 순회 연주와 프랑스 파리 초청으로 비엔나 슈테판 성당, 헝가리 리스트 음악원,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연주회, 파리 국회의사당 등에서도 연주하여 창조적이고 개성 있는 연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2013년에는 오스트리아, 체코, 슬로바키아 유럽 3개국 순회연주를 통해 한국음악의 모티브를 지닌 클래식 음악을 세계무대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제가 귀국했던 30년 전만 해도, 비올라 독주회는 한 해에 한두 번 정도였어요.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비올라 연주가도, 애호가도 한결 많이 늘었죠. 비올라 특유의 깊고 사색적이면서 부드럽고 풍부한 음색을 여러분들이 느껴주신 거죠. 바이올린과 첼로의 음역을 넘나들며 고음과 저음을 다리처럼 이어주며 따뜻하게 감싸 안는 소리가 정말 매력적이지만, 비올라의 세계는 한층 더 다양하고 무궁한 가능성을 탐색 중이에요. 비올라의 세계를 이해하는 사람들도 증가하고 비올라 연주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도 점차 많아지니, 제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 결코 헛된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보람도 느껴요. 이제는 비올라 연주가들이 더욱 탄탄하게 우리들의 무대를 만들고, 그것을 통해 사회의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음악을 하는 것이 작은 목표이자 소망입니다. 그것이 제 음악세계에 담고 싶은 이야기들이에요."

 

'올라 비올라 사운드'는 8월 18일 금호아트홀에서 앨범 발매 기념 정기연주회를 개최하였다. 그간 크고 작은 다양한 무대에서 연주했던 곡들을 모아 정통 클래식 음악부터 현대 작곡가의 음악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선사했다. 텔레만의 '비올라 협주곡 G장조'를 시작으로, 레스피기의 걸작인 '옛 춤곡과 아리아 제3모음곡' 등의 클래식 음악뿐만 아니라, 친숙한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 중 '인생의 회전목마'와 작곡가 이영조가 편곡한 '아리랑' 등을 통해 관객들과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다. 

 

진정성 있는 비올라의 울림으로

"제가 학생들에게 늘 강조하는 것은 바로 '자신만의 개성을 찾아 고민하라'는 것입니다. 학생 스스로가 자신의 장점을 찾아 발전시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학생들이 더 많다는 것이 안타까워요. 똑같은 작품을 할지라도, 그것을 연주하는 색깔은 학생들마다 다 달라져야 돼요. 개개인의 생각이 있고, 자신만의 음악성이 있는데 어떻게 똑같을 수가 있나요? 어느 무대에서 어떤 곡을 연주하든, 자기 색을 보여줘야 합니다."

학생들이 자기 색깔을 찾아가는 첫걸음은 바로 기본을 충실히 다지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조언한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기본은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콩쿠르만을 목적으로 작품 몇 곡만을 갖고 음악 생활을 지탱하는 학생들이라고 한다. 

 

"학부모님들께도 부탁드리고 싶어요. 오로지 연습을 위한 연습만을 기계적으로 시키는 것은 위험합니다. 자녀들이 스스로 생각할 여유를 갖게 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거든요. 아무 생각 없이 악기만 잘 다루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닙니다. 가끔씩 학생들에게 물어보죠. 요즘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최근 접한 문화행사는 있는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근래에 가장 흥미로웠던 일들에 대해 묻곤 하지만, 그러한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하는 학생들은 그리 많지 않죠. 모두들 시간이 없다고 해요. 다양한 시선으로 많은 것을 보고 들어야 음악적인 소양도 깊어지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음악적 기초도 탄탄하게 바로 설 수 있고요. 그런 것을 소홀히 하고 놓쳐버린다면, 결코 감동을 주는 연주가는 될 수 없어요. 아무 생각 없이 흘러나오는 연주가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에 와 닿을 수 있겠어요."

 

 

오순화 비올리스트는 자신의 음악적 터닝포인트가 바로 지금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음악적으로 소통하면서 나눔을 실천하고 싶기 때문이다. 특히 장애를 갖고 있는 학생들의 음악교육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들이 음악을 통해 조금이라도 정서적인 안정을 도모할 수 있고, 자신들의 앞날에 대해 희망을 갖게 된다면 기꺼이 사회가 앞장서서 그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취지에서 우리나라 오케스트라들이 장애를 가진 연주자들을 적어도 한 명씩만이라도 단원으로 맞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한다. 

 

"요즘 많은 분야에서 우리들이 잃어가고 있는 것이 '낭만'인 것 같아요. 음악도 어느 시대 곡이든 다 그 안에 낭만이 스며들어 있거든요. 왜냐하면 작품이 완성된 모든 시대에 로맨틱하게 만들어졌으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것이 상품화되고, 인기만 갈구하게 된 것은 아닌가 싶네요. 마음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고, 감각적으로만 보여주는 경향이 지배적이라 안타까워요.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진정성'이에요. 연주를 할 때도 최선을 다해서 진정한 마음으로 작품을 만나려고 노력하고요."

 

2015년 10월은 어느덧 비올리스트 오순화의 데뷔 30주년이다. 지금까지 쉼 없이 걸어온 그녀의 비올라 사랑이 고스란히 우리나라 비올라 역사의 큰 그림을 그려왔다. 오순화의 손끝에서, 그동안 잠시 잊고 있었던 우리들의 낭만을 다시 만나보자. 

Vol. 96 AUGUST 2015 Music Friends

 

 

삶을 풍성하게 하는 편안한 아름다움, 비올리스트 김상진

 

삶을 풍성하게 하는 편안한 아름다움, 비올리스트 김상진

비올리스트 김상진 교수님을 뵌 것은 2013년 11월 말 연세대학교 음악대학에서였습니다. 한국 실내악계를 이끌고 있는 김상진 교수님은 방송 진행자와 해설자, 음반 프로듀싱, 편곡과 작곡, 지휘

breezehu.tistory.com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