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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넘은 천상의 어울림, 온누리 사랑챔버 오케스트라

난짬뽕 2021. 1. 2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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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 사랑챔버 오케스트라를 만난 것은 2011년 8월 연습을 앞두고 있던 오후 무렵이었습니다. 사랑챔버의 지휘를 맡고 있는 손인경 바이올리니스트 주위로 단원들이 한 명 한 명 다가왔습니다. 그리고는 저한테까지 자신들이 간식으로 먹고 있던 초콜릿과 과자를 건네며,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이 다정하게 말을 건넸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 후로 주위에서 들려오는 온누리 사랑챔버 오케스트라의 연주회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냥 저의 기분도 좋았습니다. 그들만의 대화법으로 악보를 읽고, 놀이처럼 연주하는 법을 익혔던 그들은 마음으로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장애를 넘어 마음으로 연주하는

천상의 어울림

온누리 사랑챔버 오케스트라

 

 

2011년 창단 12년째를 맞고 있는 '온누리 사랑챔버 오케스트라'는 87명의 단원 모두가 지적장애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1999년 다운증후군 장애인을 비롯하여 모두 다섯 명으로 시작된 사랑챔버는 지금 아홉 살 꼬마숙녀에서부터 서른 중반에 이르기까지 단원들의 연령대가 폭넓다. 악기 연주는커녕, 상대방과의 의사소통조차도 힘들었던 사랑챔버 멤버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우리들에게 사랑과 감동을 나눠주는 희망의 오케스트라이다.

글 엄익순

 

 

악보를 읽을 수는 없어도,

우리는 연주한다

매주 화요일은 '온누리 사랑챔버 오케스트라'의 연습이 있는 날. 저녁 6시 30분부터 9시가 다 되어가는 늦은 시각까지 누구 한 명도 힘들다는 불만 불평이 없다. 87명의 단원들 중 무대에 설 수 있는 사람들은 29명 정도. 그러나 무대에 올라가지 못하는 단원들 역시 한결같이 열심히 하는 모습들이다. 사랑챔버는 모두 네 파트로 나뉘어 연습한다. 주로 무대에 올라가는 '8중주'와 '멜로디' 팀, 그리고 이제 막 연주에 흥미를 붙인 '신멜로디' 팀과 악기를 처음 접하는 초보자들로 이루어진 '꿈잉' 팀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희 단원들은 자폐성 발달장애나 학습장애, 다운증후군 등의 장애가 있죠. 각 개인마다 장애 유형이 다르기 때문에 일반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법으로는 전혀 지도할 수가 없었어요. 특수교육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들을 만났기 때문에 그들과 의사소통조차 하기 힘들었어요. 그것이 창단 초기에 겪은 가장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지금은 저희들만의 대화방법을 찾았지만요."

 

온누리 사랑챔버 오케스트라를 창단한 손인경 바이올리니스트는 되도록 말을 줄이는 대신 손 모양을 개발하여 그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고 한다. 현악기의 4개 현과 왼쪽 손가락에 같은 색 스티커를 붙여 짝을 맞추면서 운지법을 가르쳤다. 또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지도법을 개발하기도 했는데, 예를 들어 '얼음, 땡, 비행기'가 대표적인 예다. 마지막 음을 똑같이 끝내기 위해 '얼음'이라고 외치면 짧게 빨리 끝내지 않는 것으로 약속했고, 활을 동시에 멈출 때에는 '땡'을, 그리고 활을 길고 부드럽게 사용하여 여운을 낼 때에는 '비행기'라는 말을 사용하기로 단원들과 놀이를 만들었다. 이러한 놀이처럼 정해진 교육방법을 통해 단원들은 자신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손 모양에 집중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시간은 걸렸지만 멜로디가 잡히기 시작했다. 지금 단원들은 손인경 지휘자의 손 모양에 집중하며 연주를 하고 있다. 

 

뜻밖의 만남,

지금 우리는 가족이 되었다

단원들에게 바이올린 레슨을 하며 지휘까지 맡고 있는 손인경 바이올리니스트가 온누리 사랑챔버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게 된 것은 1999년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의 독주회에서 그녀가 '부산 소년의 집 관현악단'과 협연하는 모습을 본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소외된 학생들이 아마추어 음악인으로서 장영주와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며, 지금까지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하며 살아왔나 하는 후회가 들었어요. '저 학생들을 누가 시간을 내서 지도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앞만 보고 달려온 제가 지금부터라도 누군가를 위해 더불어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죠. 문득 소아마비를 앓았지만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가 된 이작 펄만이 떠올랐어요. 우리나라에도 악기도 선생도 없어서 배우지 못하는 이작 펄만이 어딘가 있을 것 같았죠. 그래서 장애인들에게 바이올린을 지도하겠다는 광고를 냈어요. 장영주의 공연을 본 것이 4월 1일이었는데, 그다음 달에 광고를 내자 바로 일주일 만에 5명의 학생들이 부모님과 함께 찾아온 거예요."

 

그러나 그녀의 처음 계획은 지체장애를 뜻했으나, 전달 과정에서 자폐와 정신지체를 가진 경우도 지원이 가능하다는 안내가 나가는 바람에 지적장애가 있는 아이 5명이 신청을 한 것이었다.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찾아온 부모들에게 차마 지체장애를 의미했다는 말을 하지 못했던 손인경 지휘자는 이러한 뜻밖의 만남 역시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며 그들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모인 5명이 '온누리 장애우 음악교실'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후, 실내악으로 구성되면서 2005년 '온누리 사랑챔버 오케스트라'로 명칭이 변경된 것이다. 지금은 전문 클래식 음악 활동을 하는 자원봉사자 선생님들 30명이 함께 지도하고 있어, 악기별로 레슨을 하고 있다.

 

장애인들이 자립할 수 있는

음악공동체 설립이 간절한 희망

사랑챔버의 첫 연주회는 창단 1년 만에 이루어졌다. 2000년 교회에서의 예배 특별 순서로 마련된 연주회였지만, 다운증후군 등의 장애가 있는 12명의 단원들이 무대에서 보여준 것은 어느 유명 음악회와도 비교될 수 없는 감동을 안겨주었다. 복잡한 곡을 연주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에 5개 음으로 연주되는 복음성가를 들려줬다. 단원들의 가족들은 물론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왜냐하면 사랑챔버가 만들어질 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물론 손인경 지휘자 역시 지적장애인들이 악기만 한 번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만 가졌지, 이렇게 연주까지 할 수 있을지는 생각조차 못했기 때문이었다. 

연습실을 마련하지 못해, 교회 복도에서 연습을 했었다고 한다. 지적장애의 용어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연습할 때면 집중하지 못하고 껑충껑충 뛰어다니거나 선생님들과 눈을 마주 보지 않거나, 의자에 5초 이상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어해서 연습시간은 늘 산만했다. 창단 멤버인 상용 씨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그는 팔을 휘두르며 여기저기를 뛰어다녔고, 시선은 늘 여러 곳을 응시하느라 선생님들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손인경 지휘자는 상용 씨가 의자에 앉아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후 상용 씨는 이십 대가 된 지금도 복지관에 다니며 사랑챔버 8중주 팀의 첼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협조 온누리 사랑챔버 오케스트라

 

사랑챔버에는 뛰어난 음감을 가진 단원들도 적지 않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시각장애인 민수는 악보 읽기가 힘들기 때문에 선생님이 직접 곡을 연주해주는데, 한 번 들은 곡을 완벽하게 연주해낸다. 악기를 배울 기회가 없었던 것이지, 사랑챔버를 통해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단원들도 발굴되었다. 그중 첼로를 연주하는 어령이는 지금 세종대학교 대학원생이다. 그가 대학 입시 실기 시험을 치를 때 심사위원들도 장애가 있었다는 것을 모를 만큼 완벽하게 연주했다고 한다. 

 

연습시간에 선생님들이 "자, 이렇게 따라 하세요."라고 말하면, 단원들은 악기를 연주하지는 않고 선생님처럼 "자, 이렇게 따라 하세요."라는 말을 따라 했었다. 지금은 이런 기억들도 행복한 추억이 되었다. 10년이 지나도 현악기의 줄을 다 익히지 못하거나 멜로디가 잡히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단원들의 실력은 그래도 날로 향상되고 있다. 병원과 복지관, 교도소, 교회 등으로 초청되어 연주를 하기도 하고, 예술의전당에서의 연주도 두 번 있었으며, 청와대에서도 성가곡과 팝송을 연주했다. 미국을 비롯하여 홍콩, 일본, 독일 등의 유럽 연주회도 가질 정도로 사랑챔버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10년에만 총 50회가 넘는 연주회를 다닐 만큼 바빴다. 

 

 

"사랑챔버 단원들과 부모님들, 그리고 선생님들까지 모두 한 가지 소망이 있어요. 작은 음악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생활하고 연주 활동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장애를 갖고 있기 때문에 부모님들이 더 이상 보살펴 줄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그때를 가장 걱정하죠. 사랑챔버라는 울타리가 있는 공간을 만들어 함께 지내다 보면, 음악을 통해 자립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기리라 믿어요."

 

현재 사랑챔버는 공연 수익금 중 예산을 위해 저축하는 금액을 제외하고는 모두 연초에 단원들에게 10%씩 장학금으로 돌려준다.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단원들의 자립을 돕고,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다. 온누리 사랑챔버 오케스트라에는 입단을 위한 오디션이 따로 없다. 다만 6주간 아이와 부모가 연습시간에 함께 참관을 해야만 단원 자격이 주어진다.

 

온누리 사랑챔버 오케스트라는 장애를 넘어 마음으로 연주하는 천상의 어울림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하고, 맑게 회복시켜 주기도 한다. 오래지 않아 함께 음악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랑챔버의 보금자리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Vol. 49 SEPTEMBER 2011 Music Fri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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