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아름다움/책

<죽음이 물었다, 어떻게 살 거냐고>, 찬란한 생의 끝에 만난 마지막 문장들

난짬뽕 2024. 4. 2.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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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남긴 생애 마지막 단어들

의사 겸 작가인 한스 할터의 <죽음이 물었다, 어떻게 살 거냐고>는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유명 인사들의 유언을 한데 모은 책이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철학자와 과학자, 정치가, 예술가, 작가, 종교인들의 생애 마지막 말은 무엇이었을까.

 

누군가의 마지막 말은 가슴 뭉클한 감동을 안겨주었고, 아름다웠으며, 때로는 조금 허무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말들 속에는 그들 자신만의 삶과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결코 '죽음'을 말하고 있지는 않다. 우리보다 먼저 살아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통해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해인 수녀님의 추천사 그대로가 바로 이 책을 대변하는 듯하다. 

 

먼저 세상을 떠난 여러 시대 다양한 사람들의 서로 다른 삶의 모습과 유언을 한데 묶어놓은 이 책은 그 자체로 소중하며 특별한 향기를 풍긴다.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얼마쯤의 두려움과 걱정을 안고 사는 우리에게 앞서 떠난 이들의 마지막 말들은 어느 날 다가올 우리 자신의 죽음을 미리 준비하며 오늘 이 순간을 더 간절하고 충실하게 살아야겠다는 선한 다짐을 하게 만든다. 

추천사 이해인(수녀, 시인)

 

죽음이 물었다, 어떻게 살 거냐고
  • 지은이: 한스 할터
  • 옮긴이: 한윤진
  • 초판 1쇄 발행: 2023년 12월 25일
  • 펴낸곳: (주)콘텐츠그룹 포레스트

 

 

죽음이 물었다, 어떻게 살 거냐고

이 책은 모두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당신의 장례식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2장 바로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라, 3장 언젠가는 인생이라는 거대한 연극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 올 것이기에, 4장 죽음보다 더 확실한 삶의 철학은 없다, 5장 그대 이제 자연의 하나로 영원히 남기로'의 주제를 통해 많은 위인들의 생애 마지막을 보여준다. 

 

부처와 공자, 빈센트 반 고흐, 체 게바라, 찰스 다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볼프강 모차르트, 루이 16세, 오스카 와일드, 칭기즈 칸, 헨리 8세, 엘리자베스 1세, 윈스턴 처칠, 존 레넌, 어니스트 헤밍웨이, 카를 마르크스, 임마누엘 칸트, 카를 융, 마리 퀴리, 루드비히 판 베토벤, 테라사 수녀, 플라톤, 프란츠 카프카, 아서 쇼펜하우어, 나폴레옹 1세, 마하트마 간디, 토머스 에디슨, 소크라테스, 클레오파트라, 아리스토텔레스,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마크 트웨인 등 이외에도 그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사람들의 일화가 소개된다. 

 

그러므로 <죽음이 물었다, 어떻게 살 거냐고>는 첫 페이지부터 읽어가도 좋고, 자신이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인물들을 찾아보는 것도 괜찮으며, 각 장의 주제 가운데 마음에 드는 부분만 골라 읽어도 크게 상관이 없다. 이 책이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는 가운데 남긴 마지막 말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다고 해서 단지 그들의 유언만을 모아 놓은 것은 아니다. 각각의 인물들에 관한 생애가 잘 정리되어 있고, 우리들이 잘 알지 못했던 죽음 당시의 일화와 그 이후의 이야기들까지 들려주고 있어 책의 내용이 너무 딱딱하거나 우울하지는 않다. 

 

세상을 뜨기 얼마 전 자기면역성 충동에 휩싸인 고흐는 스스로 왼쪽 귀를 잘라버렸고, 본인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그 이후 모든 것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고흐는 죽어가면서 자신을 돌봐왔던 동생 테오에게 "부탁이니까 울지 마. 이게 우리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야. 슬픔은 영원히 남는 거야. 난 이제 집에 가는 거라고."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장발 머리, 거뭇거뭇한 수염이 트레이드마크였던 체 게바라는 쿠바 혁명의 주인공이자 영웅이다. 의학을 공부한 그는 의사가 되었지만, 우연히 여행을 하다가 노예와 빈민의 삶을 보고 빈부격차의 현실을 접하고는 큰 충격을 받아 사회주의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의 혁명 과정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는데, 마지막 순간 체 게바라에게 총을 겨눈 볼리비아의 하사관은 그의 말을 듣고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당신이 날 죽이려 왔다는 것을 알고 있고. 떨지 말고 그냥 방아쇠를 당기시오. 당신은 단지 사람 한 명을 죽이는 것뿐이오." 이 말은 즉 체 게바라 한 사람의 죽음일 뿐, 혁명 그 자체의 종말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마지막  왕이자, 프랑스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두대에서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왕이었던 루이 16세는 선량하고 성실했지만, 정치적으로 뛰어난 자질은 갖추지 못했다고 평가된다. 그는 처형대에서 마지막 연설을 끝맺기도 전에 떨어진 칼날에 죽음을 맞이했다. " ~ 나는 비록 죄가 없지만 죽음을 맞이한다~~. 나는 나의 피가 프랑스를 위해 사용되기를 기원하고 그리고 신의 화를 잠재우기를 바란다. 그리고 너, 불행한 민족에게도~~." 

 

"죽음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충분히 잠을 잤구나."의 말을 남긴 칭기즈 칸의 무덤은 많은 연구와 탐사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그 위치가 밝혀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잠든 곳의 흔적을 영원히 감추기 위해 수천 명의 기수들로 하여금 무덤 위를 활보하라는 명을 내렸다고 한다. 

 

영국의 가장 위대한 수상으로 기억되는 윈스턴 처칠은 70대 중반이 되었을 즈음 "난 나의 창조자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신이 나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또다른 문제이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서 냉정하고도 풍자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격렬한 삶을 살아낸 그의 마지막 말은 "모든 것이 지루하구나."라는 말이었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지는 꽃잎처럼 현자는 그렇게 가는구나

공자

 

독일의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 정치 이론가였던 카를 마르크스는 마지막 순간을 함께한 엥겔스에게 그리스 철학가 에피쿠로스의 말을 인용해 삶의 마지막 문장을 시작했다. "죽어가는 이에게 죽음이란 불행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남은 이에 대한 불행인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는데, 19세기와 20세기를 뒤흔든 사상가의 마지막 문장치고는 다소 무심했다는 이야기가 떠돈다. 

 

유언이란 살아서 할 말이 별로 없었던, 
좀 바보 같은 사람들을 위한 것 같네.

카를 마르크스

 

임마누엘 칸트는 그의 마지막 날, 친구인 바시안스키가 설탕을 넣어 묽게 탄 와인을 칸트에게 주었다고 한다. 칸트는 그것을 마시고 이렇게 속삭였다. 

 

어! 좋다 임마누엘

칸트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남긴 138개의 작품들은 지금 현재까지도 아름다운 인류의 보물이다. 독일의 위대한 음악가였던 그는 32세의 나이에 자신의 유언장을 남긴다. 

 

나에게 주어진 가장 고귀한 재능, 청각이 거의 소실됐음을 깨달았다. 그로 인해 나는 흡사 유배지에 고립된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 주변 사람들이 멀리서 들려오는 플루트의 소리를 듣는 동안 난 들을 수 없었다. 그때 느꼈던 수치심이란~~~. 단지 신체 능력의 일부가 사라진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내 삶을 마감한 것이나 다름없다. 예술, 그것만이 나에게 살고자 하는 의지를 부여한다.

 

임종 성사를 치르기 위해 성직자를 부르려 하자, 베토벤은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던 두 친구들에게 고대 로마 시대의 연극이 끝났을 때 사용되던 전형적인 마지막 대사인 " 친구들이여, 박수를 치게나. 드디어 이 희극이 막을 내리지 않나."를 인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다음 날, 수종과 손상된 간을 회복시킨다고 믿고 있었던 뤼데스하이머의 포도주 도매상이 베토벤에게 두 병의 포도주를 보내왔는데, 그것을 보고 나직이 말한 것이 위대한 음악가의 마지막 말이었다.  

 

이런! 이런! 너무 늦었어~~~.

루트비히 판 베토벤

 

나폴레옹 1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 프랑스~~ 군대~~ 선봉~~ 조제핀.". 그것은 그의 삶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것들이었으며, 독일의 시인이자 의사였던 고트프리트 벤은 "나에게 죽음이 오는 이 순간에도 당신이 보고 싶소. 죽어가면서 내 손이 힘없이 아래로 처지는 이 순간에도 당신의 손을 잡고 싶소."라고 자신의 부인에게 사랑의 편지를 남겼다고 한다. 

 

토머스 에디슨은 영원히 잠에 빠져들기 직전에 머리를 창가로 돌리며 "저곳은 참으로 멋진 곳 같소."라고 속삭였고, 클레오파트라는 독사가 숨겨져 있는 바구니를 건네받고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데, 바구니 속의 뱀에게 "그래, 네가 거기에 있었구나."라는 말을 남겼고, 독일의 초대 총리였던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일찍 사별한 부인대신 항상 자신의 곁을 지켜온 딸의 손을 잡고는 "나의 아이야, 고맙구나."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왜 우느냐? 내가 영원히 살 것이라고 생각했느냐?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더 어렵구나.

루이 14세

 

죽음은 내가 짊어져야 할 몫이기도 하고, 너의 일이기도 하며, 우리 모두가 피해 갈 수 없는 마지막 길이기도 하다. 그것은 인생의 목표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의 문제와 더불어 내 삶의 마무리가 어떠한 모습으로 마침표 찍어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될 것이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자신의 목전에 다가온 죽음에게 "죽음이여! 난 네가 두렵지 않다!"라고 소리치며 숨을 거뒀고,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왕자와 거지> 등의 작품을 남긴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서기 직전에 그의 사랑스러운 딸에게 "잘 지내거라~~~ 우리가 다시 만날 때까지."라는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 떠올랐다. 

귀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지금 누군가의 소풍은 많이 어렵고 힘들기도 하고, 어느 사람에게는 빨리 이 소풍을 끝내고 싶은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울음을 삼키는 날들이 없지 않을 듯싶기도 하다. 그럴 때면 이 책의 제목인 <죽음이 물었다, 어떻게 살 거냐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우리들 모두가 내 삶이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느껴진다.

 

지은이 한스 할터(Hans Halter)

의사 겸 작가.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한 뒤 전문의가 되었다. 그 후 몇 년간 병원에서 근무했으나 글 쓰는 것을 좋아해 ≪슈피겔≫지의 저술가 겸 리포터로 활동했다. 저자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여러 언론 매체에 의학·과학 분야와 관련된 많은 글을 기고했고, 여러 권의 책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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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현자들의 마지막 순간을 품위 있는 시선으로 그려낸 이 책은 수십 명의 생애와 유언과 관련된 자료를 몇십 년간 축적하고 수집한 결과물이다. 그 끝에 저자는 누군가의 마지막 문장 속에는 평생의 삶과 행동, 고집 그리고 가치관이 농축돼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죽음이 물었다, 어떻게 살 거냐고>는 죽음을 통해 살아감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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