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아닌 하루가 계속되고 있었다.
무너진 삶을 회복하고
조각난 가족을 원래대로 맞추는 데 필요한 것은
그저 그런 평범한 일상, 그게 다였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들이 모이고 모이다 보면,
언젠가 주연도 보통의 아이들처럼 평범해질 수 있을지 몰랐다.
당신과, 당신의 가족처럼.
<죽이고 싶은 아이 2> 중에서

<죽이고 싶은 아이 2>,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누구도 주연의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가장 친한 친구를 잃고, 가족에게도 믿음을 받지 못한 채 버려지고 초라해진 작은 소녀 따위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욕을 받던 아이는, 누구도 자신을 믿어 주지 않는 세상 속에서 찢긴 채 오래된 꽃처럼 시들어 가고 있었다. p 34
얼마 전에 이꽃님 작가의 <죽이고 싶은 아이>를 읽고 나서 바로 그 후속 작품을 읽고 싶었지만, 도서관 대기가 너무 길어 대출 예약을 한 지 석 달만에 비로소 <죽이고 싶은 아이 2>를 읽게 되었다.
<죽이고 싶은 아이>가 출판된 것은 2021년이었으니, 이 책 <죽이고 싶은 아이 2>는 그로부터 3년 만에 다시 독자들에게 다가온 것이다. 사실 이꽃님 작가는 전편을 통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모두 풀어낸 것이라서 후속 편을 쓸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해 겨울 강연장에서 만난 한 중학생이 건넨, "작가의 말에 보니 '작가는 인물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배웠다'라고 쓰여 있던데 정말로 작가님은 책 속의 인물에게 책임을 졌다고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을 받고는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내내 그 질문이 목구멍에 가시처럼 맴돌며 자신을 괴롭혔다고 한다.
그래서 작가는 <죽이고 싶은 아이>의 주인공들에 대해 책임을 다하고자, 이 책의 두 번째 이야기인 <죽이고 싶은 아이 2>를 발표한다. 이꽃님 작가에게 그러한 질문을 했던 그 중학생이 문뜩 궁금해졌다. <죽이고 싶은 아이>의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서 무엇인가, 이꽃님 작가의 다른 책들과는 다른 '미처 끝내지 못한' 결말을 급히 마무리 짓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말끔하지 못했던 그 기분을 중학생의 질문이 명쾌하게 풀어놓은 것이었다.
어쩌면 그 중학생도 <죽이고 싶은 아이 2>의 내용을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모두에게 아픔을 남긴 채 마침표를 찍기에는, 책을 읽은 우리들이 받은 상처가 오랫동안 아물지 못할 것만 같았다. 누구나 미루어 짐작할 만한 전개라도, 그저 그런 뻔한 이야기라 할지라도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 아픔을 감싸주며 다시 일으켜 세워야만 할 것 같은 책임감. 그것은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죽이고 싶은 아이 2>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죽이고 싶은 아이 2
- 이꽃님 장편소설
- 지은이: 이꽃님
- 초판 1쇄 펴낸날: 2024년 7월 1일
- 펴낸곳: (주)우리학교

<죽이고 싶은 아니 2> 줄거리
중학교 때부터 단짝 친구였던 서은과 주연. 어느 날 학교 건물 뒤 공터에서 서은이 죽은 채 발견되고, 주연이 용의자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된다. 주연은 그날의 기억들이 나지 않고, 그날의 진실을 보았다는 증인까지 나타난다.
그러나 재판 당시 증언을 했던 목격자가 웃음을 짓는 표정을 보고 사건을 담당했던 신 형사는 의심스러운 마음에 다시 수사를 하고, 결국 같은 학교 학생인 목격자가 서은을 죽게 한 범인이라는 것을 밝혀내게 된다.
사건이 종결된 후 주연은 다시 학교에 가게 되지만, 친구들의 괴롭힘은 물론 학부모들까지 1인 시위를 하며 범죄자인 주연이 자신들의 자식들과 함께 학교에 다니는 것을 막고, 유튜버들과 언론 역시 주연을 재미로 삼는 화젯거리로 만들어 버린다.
그에 반해 창가에 놓인 벽돌을 실수로 떨어뜨려 서은을 죽게 한 목격자에 대해서는 운이 나빴다며 벌을 받지 않아도 되는 모범생이라고 모두들 옹호한다.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상실감에 빠져 있는 주연과 살인자라는 누명을 쓴 딸을 둔 주연의 아빠와 엄마, 그리고 사랑하는 딸을 잃은 서은의 엄마. 어느 날 갑자기 무너져 버린 삶을 살고 있는 그들 모두의 하루하루가 너무나 버겁기만 하다. 그들은 무너져 내린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괜찮은 어른이 되어 가는, 책 속의 문장들
주연 엄마는 알지 못했다. 매 순간 최고의 것만 주겠다는 자신의 마음이 딸아이에게 어떤 불안감을 주었는지, 딸이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던 때에, 엄마가 널 지켜 줄 거라는 따뜻한 말 대신에 나한테 왜 그러느냐고 따져 묻던 그 말이 주연의 가슴에 얼마나 큰 상처를 입혔는지. p 94
평생 딸아이가 힘들다고 할 때마다 도망 다니게 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주연 아빠는 또다시 주먹을 쥐고 어금니를 깨물며 죽을힘을 다해 버티기로 마음먹었다. p 178
'엄마는 목숨 걸고 아기를 낳아 주는 것으로, 아기는 그런 엄마에게 웃어 주는 것으로 엄마랑 자식 간의 빚은 끝이야.' p 190
우리가 병원에서 가족 상담받는다고 하면 여러 사람 입에 오르내리겠죠. 병원 오가는 모습만 봐도 온갖 걸 부풀려서 얘기할 거예요. 그래도 상관없어요. 내 인생에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그런 사람들 말에 휩쓸려서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했어. 더는 그런 말들에 휘둘리고 싶지 않아요. p 206

아픔을 가십거리로 만들어 버리는 우리 사회의 단면들
변호사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주연을 믿지 않는지 때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목격자로 진술했던 진범이 아니라 주연을 더 미워했다. 처음부터 누가 누구를 죽였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사람들은 그저 주연을 증오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자신의 분노를 세상에 푸는 것 같았다. p 108
누군가를 헐뜯고 미워하고 욕지거리를 내뱉으면,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고 어떤 변명도 들어주지 않은 채 몰락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어둡고 불쾌한 구덩이를 점점 더 크게 만들어 누군가를 파묻고 나면, 그렇게 하면 안식이 찾아오는 걸까. p 109
그들은 여론을 만들었고, 여론에 따라 사람들의 심리도 바뀌었다. 문제는 언론이 여론을 만들기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거였다. 어떤 언론은 여론에 따라 움직였다. 사람들이 주연을 비난하는 일이 계속되면 또다시 주연에게 불리한 이야기가 만들어질지 몰랐다. p 110
언론이며 주민들이며 온 세상 사람들 시선이 다 그 사건 하나에 몰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언론에서 어떻게 했는지 잊으셨습니까? 아직 밝혀지지도 않은 사건에 기름 부어가며 불난 집에 부채질을 했죠. p 114
<죽이고 싶은 아이>가 진실과 믿음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이 책 <죽이고 싶은 아이 2>는 소문이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을 장악해 가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이꽃님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이어간다. 그리고는 동시에 산산조각 나고 부서진 인생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모습을 그리려 애썼다고 한다.
아무리 무너져 내린 삶이라도
다시 일으켜 세워야만 하므로,
그래야만 하는 것이 삶이므로.
어떤 어려움도 돌파하지 않고, 이겨 내지 않고 지나갈 방법은 없었다. 도망치는 일은 그저 잠깐의 안식을 줄 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터였다. 이번에 도망가면 그다음은 버틸 수 있을까? 아니, 도망은 도망을 부를 뿐이었다. p 178
진범은 모범생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감싸고,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갔음에도 단지 실수였다는 이유로 사람이 그렇게 뻔뻔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한 친구를 잃어 아픔에 빠진 또 한 명의 친구를 비난하고 외면할 때 바른말을 했던 선배 언니들이 참 멋있었고, 급식실 영양사 선생님과 조리사 할머니도,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잃은 엄마를 남몰래 위로하는 슈퍼 아줌마도 참어른처럼 느껴졌다.
<죽이고 싶은 아이 2>는 상처받은 사람들이 맞닿은 그 절망의 끝에서 피어나는 희망을 만나는 이야기이다. 어른이 그냥 어른이 아니고, 부모 역시 모두가 부모다운 부모인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어떤 부모가 될 것인지, 더 나아가 조금은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들 치유될 수 없는 상처로 인해 그 아픔을 가슴속에 안고 살아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무너져 버린 자신들의 삶을 다시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었던 결말일지라도, 그래도 이 책의 결말은 이렇게 모두를 보듬으며 마침표를 찍게 되어 참 다행이다.
이꽃님 장편소설 <죽이고 싶은 아이>, 진실과 믿음에 대한 질문들
이꽃님 장편소설 <죽이고 싶은 아이>, 진실과 믿음에 대한 질문들
진실이요?백번 천번도 넘게 말했습니다. 전 아니라고요. 아무도 안 믿더라고요. 그때 깨달은 게 하나 있습니다. 세상은 진실을 듣는 게 아니구나. 세상은 듣고 싶은 대로만 듣는구나. 진실과 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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