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바로 저 은행나무 때문이었다. 잠실 종합운동장 수영장 주차장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은행나무들이 자꾸만 '지금이야. 더 늦기 전에 가을을 만나고 와.'라고 말하는 듯했다고.
새벽마다 수영을 하고 출근하는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주말에 가을을 만나러 가자고.
그래서 우리는 지난 주말에 깊어가는 가을을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렇지 않아도 무르익는 가을을 그냥 보내기가 아쉬웠는데, 11월 중순 지금의 가을을 놓치지 않게 되어 마음이 설렜다.
토요일 새벽에 출발했는데, 벌써 길은 막히고 있었다. 서울을 빠져나가는 데만 해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서종이나 양평 방향으로 빠지는 차들이 많아 조금씩 정체가 풀리는 듯했다.
내가 지금껏 가평휴게소에 가본 이래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은 처음이었다. 모두들 어디로 가는 것일까, 무척이나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는 호두과자와 통감자를 샀는데, 이제는 현금으로 계산할 수가 없다. 앱으로 주문하면 할인까지 받을 수 있다.
가평휴게소를 지나니, 시원하게 달릴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 날씨가 이상하다. 한여름처럼 너무 더워 에어컨을 켰다.
이발을 한 산등성이들이 많았다.
토요일인데 훈련을 나가는 것일까. 우리 차 옆으로 지나가는 트럭 뒤에 나란히 앉아 있는 군인들의 얼굴이 피곤해 보여서 마음이 짠했다.
남편은 운전을 하면서 서두르지 않았다. 오늘, 우리들의 목적지는 따로 없었다. 그냥 가을길을 달리며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몇 시까지, 어디에 도착해야 할 필요도 없었으니 서로 느긋했다. 이 가을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우리는 지금 바로 이 순간이 좋았다. 그래서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오늘만큼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속도도 불필요했던 것. 그것은 바로 가을이 준 선물이었다.
뤽상부르 정원은 초록의 천국 쉼터, 파리가 건네주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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