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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장편소설 <영원한 천국>, 삶과 죽음 그 너머 인간의 본성과 욕망

난짬뽕 2024. 11. 22.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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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천국
  • 지은이: 정유정
  • 1판 1쇄 발행: 2024년 8월 28일
  • 펴낸곳: (주)은행나무

 

그곳은 정말 '영원한 천국'이 될 수 있을까

정유정 작가의 <영원한 천국>은 500페이지가 넘는 꽤 굵직한 장편소설이다. 그러나 책이 두툼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었다. 

작가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60여 권의 책을 읽으면서 참고했고, 작품에 등장하는 공간을 찾아 이집트의 바하리아 사막과 홋카이도의 유빙 지대인 아바시리를 여행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녀가 답사했던 이곳들은 소설 속에서 비중 있는 공간으로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 되는 재활원인 삼해원은 일본의 어느 형무소가 모델이다. 

이러한 광범위한 자료 수집의 흔적들은 책에서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의학과 과학, IT 분야와 게임, 동물과 식물, 커피, 음악 등의 소소한 등장들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 세계 최대의 IT 기업 엑스와 글로벌 제약 회사 SG바이오가 손잡고...... 인류의 마지막 숙제, 죽음을 극복하는 프로젝트......"  p 29
"엑스라는 IT 기업이 있어. 게임 회사로 알려졌지만 실제 주력 분야는 가상세계 플랫폼이야. ~~~" p 317

 

<영원한 천국>의 내용을 단편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위의 두 문장이 아닐까 싶다. 가상세계 플랫폼, 그것은 죽음을 극복하는 프로젝트. 지금도 발전하는, 그리고 무섭게 진화하는 미래 과학의 세계. 정말로 그 시대는 이 책의 제목처럼 '영원한 천국'이 될 수 있을까? 그 천국으로 진입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치열한 경쟁과 그로 인해 감행되는 뺏고 뺏기는 천국행 티켓을 향한 욕망들. 

단순히 SF 소설을 넘어, 인간의 삶과 죽음 그 너머의 욕망까지 고민해보게 하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실과 가상세계를 오가는 가운데, 가족과 남녀 간의 사랑과 본성까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 주인공 경주와 해상, 제이의 인물 캐릭터들도 자기만의 뚜렷한 주관이 있어 좋았다. 

 

디지털 불멸을 향한 인간의 욕망

롤라는 거대 네트워크이자 빅 데이터이며 통합 플랫폼이다. 게임과 커뮤니티와 영상 혹은 방송 채널이 무한대로 생성되고 소비되는 곳이다. 이곳엔 지상의 동화와 지하의 신화가 동시에 구현되는 가상세계도 존재한다.  p 19
"롤라에 보낸다는 건 정보 형태로 네트워크에 업로드시킨다는 얘기야. 몸을 뺀 나머지, 그러니까 한 개체의 고유한 의식, 무의식, 본성, 반사작용, 감각이나 신경 회로 같은 것들 모두."  p 319
"업로드되면 그들은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살게 돼. 자기의 정신과 몸, 둘 사이의 협응까지 완벽하게 홀로그램으로 구현해낼 수 있으니까. 자기가 원하는 것도 모두 할 수 있고. 홀로그램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실제와 똑같은 가상현실이거든."  p 319

 

<영원한 천국>에서 작가는 말하고 있다. 가상세계에선 하고 싶은 일을 실제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데, 무슨 짓을 저질러도 범죄로 인정하지 않고 벌도 받지 않아 도덕적 부담을 짊어질 필요도 없다고. 또한 어디론가 가고 싶은 사람은 어디로든 갈 수 있다고. 

가상의 삶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주인공 시점으로 선택하여 살아볼 수 있는데, 그것은 실제 삶과 똑같이 인식된다. 만약 살아본 그 삶이 좋았다면 반복해서 다시 살 수도 있는데, 만약 이전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다른 삶을 선택하여 살아볼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이전의 삶이 싫었다면 다른 극장을 찾으면 그만이다. 점점 더 행복한 삶을 찾다 보니 행복에 내성이 생겨 도무지 행복하지 않다면, 불행하고 고통스럽고 고달픈 삶을 택할 수도 있겠다. 도파민 평형을 되찾는 데 가장 유용한 전략이다. 쾌락 역치를 낮춰 사소한 즐거움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으므로.  p 20

 

너무 무서운 문장이었다. '행복에 내성이 생겨 도무지 행복하지 않다면'이라는 표현이, 어쩌면 더 많이 행복해지고자 하는 욕구에 의해 연구하고 개발된 과학기술에 의한 씁쓸한 단면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지털 불멸은 사이버 공간상에서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시대를 일컫는 말이다. 인간의 욕망이 디지털 불멸에 이르는 최첨단 과학기술로 정점을 찍을 수 있겠지만, 그 이후에는 또 어떠한 상상 이상의 욕망들을 사람들은 원하게 될까. 인간의 욕망에는 끝이 있을까. 

만약 나에게 영원히 살 수 있는 가상세계로의 초대권이 있다면...... 아마도 나는 가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가야만 될 상황이라면...... 봄날의 햇살로, 혹은 잔잔한 부드러운 바람이 되고 싶다.
 

 

<영원한 천국>, 줄거리

가상세계 롤라를 활용하여 의뢰자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1인칭 가상 극장 드림시어터를 만드는 설계자 해상은 어느 날 자신의 기억을 바탕으로 드림시어터를 만들어달라는 경주의 의뢰를 받는다. 

도수치료사로 인정받던 경주는 아버지의 죽음에 이어 의료사고로 직장을 잃고, 자신과 싸우고 집을 나간 동생이 노숙자 촌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실의에 빠진 그는 죄책감에 집을 떠나 숙식이 해결되고 급여가 많은 노숙자 재활시설 삼애원의 보안요원으로 일하게 된다.

그곳에서 함께 입사한 동기 제이가 노숙자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비밀리에 찾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삼애원에 떠도는 소문을 듣는다. 미국의 한 생명공학 회사가 인간이 죽지 않는 방법들을 찾아냈고, 세계 최고의 게임회사와 손을 잡고 신들이 거처할 세상을 만들었다는 것. 그리고 그 실험 대상으로 노숙자들에게 무작위 티켓이 발부되었고, 그 티켓을 얻기 위해 노숙자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그 소문의 내용이었다.

입사 동기 제이는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 해상이 새로운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상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유심을 얻기 위해 삼애원에 들어왔지만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제이의 희생과 삼애원의 설립자이자 폐암을 앓고 있던 베토벤의 양보로 해상이 우리나라에 배포된 마지막 유심을 갖게 된다.

가상세계 롤라에서 타인의 삶을 설계하는 설계 디자이너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해상은 이 모든 사실들을 경주를 통해 알게 된다. 
 
 

책 속의 문장들

어느 인류학자는 개체와 개체 사이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개인 공간이 있다고 주장했다. 연인이나 가족에게만 허용되는 거리로 반경 46센티미터 정도라고 한다. 그 안으로 낯선 자의 손이 불쑥 들어오면 공격 충동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었다.  p 64-65

신경을 끈다는 건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관계를 맺지 않으면 내 오감에 걸리는 상대의 모든 것은 무의미한 신호에 불과하다. 무의미한 것은 편안한 것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p 73

그 이해가 왜 그리 중요한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모든 생명체는 우연에 의해 태어난다. 우연하게 관계를 맺고 우연 속에서 살다가 죽는다.  p 390

생생하게 기억하는 능력은 어떤 이에겐 저주가 된다. 그런 사람들은 세월이 주는 축복, 기억을 추억으로 바꾸는 도색 작업이 불가능하다. 당시의 상황과 감정까지 기록물처럼 고스란히 남아 있다. 기억을 되짚는 일은 그 일을 다시 겪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p 409

대면하기 위해서였다. 피하려고 애쓰며 살아온 기억과 마주 보기 위해서였다. 마주 볼 수 있다면 불친절하고 변덕스러운 운명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해하면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받아들이면 더는 도망치지 않을 것 같아서.  p 435

"어떤 행운은 저주와 같은 말이기도 해요."  p 486
 
 

작가 정유정에 대하여

장편소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을, <내 심장을 쏴라>로 제5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7년의 밤> <28> <종의 기원>은 주요 언론과 서점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며 큰 화제를 모았고, 영미권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핀란드, 중국, 일본, 브라질 등 해외 22개국에서 번역 출판되면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외에도 에세이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장편소설 <진이, 지니><완전한 행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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