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아름다움/음악

보이 소프라노의 부활, 샬롯 처치

난짬뽕 2021. 8. 4.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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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 소프라노의 부활

샬롯 처치

Chariotte Church

 

sony music

 

12세의 소녀 샬롯 처치에게서는 두 얼굴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무런 꾸밈없이 활짝 웃어 보이는 천진난만한 순수와 더불어 다양한 레퍼토리를 완벽하게 소화해 내는 경이로운 음색까지. '천상의 목소리'라 불리는 가장 높은 음역, '보이 소프라노'의 영혼이 바로 샬롯 처치를 통해 재탄생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Voice of Angel> /sony music/은 1998년 말 영국에서 출시되어 발매 3주 만에 클래식과 팝 차트에서 각각 1위와 3위를 차지했던 앨범으로, 한 달 만에 60만 장이라는 판매 기록을 남긴 놀라운 음반입니다. Pie Jesu를 비롯하여 Panis Angelicus와 In Trutina, The Lord's Prayer, Jerusalem 그리고 Danny Boy, My Lagan Love 등 그 수록곡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성가곡은 물론 민요와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까지 다양한 장르를 두루 포괄하고 있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12세의 소프라노 샬롯 처치입니다. 영국 웨일스에서 태어난 샬롯이 자신의 천재성을 드러낸 것은 그녀의 나이 3세 때라고 합니다. 케어나폰에서 열린 해변 휴일 캠프에 사촌들과 함께 참가하여 부른 '유령 잡이'로 첫 무대를 장식합니다. 이후 지역 노래 경연대회에서 그 순수한 명료함으로 청중들을 매료시켰던 8세 때에는, 우연히 그 장면이 국영 TV를 통해 전국에 중계되는 것을 계기로 방송 출연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 방송에서 사회자는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피에 예수'를 불러달라는 즉흥적인 요청을 하게 되는데요. 샬롯은 아무런 주저함 없이 그것의 몇 소절을 완벽하게 펼쳐놓음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며칠 후 샬롯은 다른 방송 프로그램에도 출연하여 그 노래의 전곡을 부름으로써 다시 한번 신동이라는 찬사를 확인받게 됩니다. 

 

sony music

 

맑고 청아한 음색과 성숙한 음악성. 그녀의 목소리를 접한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은 샬롯을 통해 '보이 소프라노'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유럽 음악의 전통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며 면면히 그 흐름을 간과할 수 없었던 어린이의 목소리. 19세기까지 지속된 성적 차별로 인해,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교회의 단상에는 여성의 출입이 금기시되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음악에 있어서 소프라노 음역을 남자 어린이의 보이 소프라노가 대신했으며, 알토 음역은 카운터 테너가 그 역할을 맡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특히 알토 성부 경우에 카운터 테너가 대신하기 이전, 16세기 이탈리아 지역에서는 변성기 이전의 남아를 거세하여 성인이 된 이후에도 알토 음역을 유지하게 하는 소위 카스트라토가 유행했음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즉, 교회음악에서 보이 소프라노의 오랜 역할은 카스트라토나 카운터 테너의 유행과 마찬가지로 중세부터 지속된 교회의 성적 차별에 따른 여성 음역의 대역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관습 속에서 유럽 음악은 하나의 고정된 관념이 자리 잡게 되었는데, 가장 높은 음역인 천상의 목소리는 바로 소프라노, 그것도 어린이의 보이 소프라노로 묘사하는 전통이었는데 그것은 수많은 미사 음악과 칸타타, 오라토리오 등 교회음악의 수없이 많은 보기들에서 확인될 수 있는 부분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점은 성적 차별과 관련된 교회의 오래된 관행을 넘어, 기독교 사상을 중심으로 한 서구문화가 어린이를 천사로 묘사한 깊은 전통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작품들 속에서 보이 소프라노는 단순한 소프라노의 대용물이 아닌 것입니다. 비록 오늘날 많은 부분이 소프라노에 의해 불려질 때, 작품의 본질이 보다 명확해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훌륭한 보이 소프라노를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20세기 이전처럼 이 음악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종교음악의 퇴색은 이 음역을 '미성년의 음색'으로 간주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기악과는 달리 자신의 신체 자체를 악기로 사용하는 성악의 경우 신동을 만나기란 극히 어려운 일인데, 그것은 단지 어린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도달할 수 없는 음악성을 작품이 요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샬롯은 그러한 어린이의 순진 무결한 목소리와 함께 완벽한 음악성이라는 두 요인을 겸비한, 이상적인 보이 소프라노의 목소리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서 있었습니다. 훗날 라 스칼라와 밀라노 극장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의 타이틀 롤을 완벽하게 소화해낼 자신의 모습을 꿈꾸었던 샬롯은 이제 35세의 어른이 되어 있습니다. '천상의 목소리'라는 찬사와 함께 한때 압도적인 열광과 지지를 받았지만, 지금은 팝이나 록 장르로의 변신을 시도하며 싱어송라이터와 영화배우, TV쇼 사회자로도 활동하며 조금은 평범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2007년 영국의 7세 소녀 코니 탤벗과 2010년 10살인 재키 에반코, 그리고 그 이전인 2003년 9세의 아미라 비리하겐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등장했을 때 모두들 '천재'의 등장이라며 찬사를 보냈었습니다. 샬롯은 그 '천재'라는 대명사의 가장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Voice of an Angel>은 최고의 프리마돈나가 어린 시절에 남긴, 그 시절에만 부를 수 있는 레퍼토리를 담은 추억의 앨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련된 기교와 능숙한 노련미 대신 12세의 어린 소녀가 그 나이에 맞게 들려주는 음악인 것입니다.

 

풀리지 않는 문제로 인해 마음이 무겁고 복잡할 때에는 꾸미지 않은 순수한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들의 머릿속에서 서로 뒤엉켜 버린 고민들이 쌓여 있다면, 열두 살 샬롯의 목소리를 만나보시는 것은 어떠하실까요. 어쩌면 해맑게 웃고 있는 샬롯의 미소가 오랫동안 풀지 못한 고민거리에 대한 실마리를 던져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모든 문제들은 어쩌면 다른 사람에 의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닌, 바로 나 자신으로부터 발화되고 있을 지도~~ 아름다운 음악은 그런 헝클어진 마음에 시원스레 내리는 비가 되고 바람이 되어 다가오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오늘도 음악과 잠시 만나려 합니다.  

 

▶▶▶ 조금은 힘이 들 때, 친구가 되어 주는 그들의 음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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