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등을 밝혀 중국을 맛보다
인천 차이나타운
한국과 중국의 퓨전요리인 자장면이 태어난 곳으로, 청조 특유의 붉은 색깔이 자연스러운 동네.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한국 속의 중국을 만나 봅니다.
뉴욕과 보스턴, 시카고, 런던, 싱가포르, 요코하마, 시드니 등 영어권과 아시아의 대도시에는 모두 차이나타운이 자리해 있다고 합니다. 샌프란시스코와 요코하마의 차이나타운은 밝고 아기자기한 이미지인 반면, 보스턴은 유흥 지구와 바로 붙어있기 때문에 조금은 혼란스러운 느낌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멋있는 세계 속의 차이나타운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시드니를 손꼽을 것입니다. 시드니의 차이나타운은 중앙 도로에서 자동차의 행렬을 모두 없애 버리고, 아예 옥외 카페 식으로 조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인천의 차이나타운은 어떤 모습일까요.
옛 흑백사진을 보듯
세월의 냄새가 살아있다
인천 지하철역을 빠져나오자마자 오른쪽으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 특별한 행사가 치러지지 않으면 주말이라고 해도 사람들의 발길이 그리 많지 않은 이곳의 풍경은 어색하지 않을 만큼의 이국적인 정취가 느껴지며, 조금은 고즈넉한 분위기입니다.
1884년 4월 청국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체결된 후 생성된 인천의 차이나타운에는 당시 청 · 일 · 영 · 독 · 러 영사관과 호텔, 세계 풍물 요리점과 무역상, 은행, 국제 명사들의 저택, 국제 사교장이었던 제물포구락부 등이 모여들었습니다. 5천 평 지역에 청국의 영사와 학교가 들어서고, 중국의 산둥반도와 정기적으로 배가 운영되면서 화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중국에서 가지고 온 식료잡화와 소금, 곡물을 팔면서 점차 이곳의 상권을 넓혀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 어쩌면 세계화 기지로 부상했을지도 모를 이곳이, 안타깝게도 일제의 침략으로 그만 크게 성장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2001년 인천 국제공항의 개항으로 그 옛날의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인천의 차이나타운에 대해 새롭게 관심이 모아지게 되었습니다.
현재 화교 2, 3세대들이 살고 있는 이곳에서 가장 먼저 사람들을 반기는 것은 다름 아닌 차이나타운 입구에 세워져 있는 페루입니다. 미국이나 일본의 차이나타운에도 설치되어 있는 이것은 정문 역할을 하며,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곳과 자매결연을 맺은 중국 산동성 웨이하이시가 2억 원을 들여 직접 제작하여 무상으로 기증하였는데, 중국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다른 나라에 페루를 무상으로 기증한 것은 우리나라가 처음이라고 합니다.
페루를 통과하여 가파른 능선 위에는 중국 남부식 테라스와 아치 장식의 화려한 건물과 북부식의 거친 회벽의 벽돌조 건물이 공존합니다. 산기슭 조계지 쉼터에는 영 · 독 · 불 · 러시아풍의 지붕과 창문 모양의 독특한 집들이, 그리고 부두 쪽으로는 수수하고 담백한 벽돌조 창고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아시아와 유럽,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의 건축 양식이 공존함을 느끼게 됩니다. 계단길 역시 이곳의 독특한 재미입니다. 동네 전체가 계단식으로 되어 있어 한 칸씩 오를 때마다 재미가 있습니다. 온 동네 풍경이 한눈에 잡힐 듯 말 듯 아기자기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예전 청국 영사관 자리는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화교 학생들의 학교로 변해 있었는데, 건물은 몇 번의 보수를 거치긴 했지만 아직도 중국풍이 물씬 풍깁니다. 현재 해안 천주교 교육관으로 사용하는 중국인 주택은 1939년에 세워진 건물로 각 부위의 섬세함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차이나타운의 거리를 걷다 보면 길 양쪽으로 중국집이 많이 늘어선 골목을 지나가는 느낌이 드는데, 실제로 자장면부터 퓨전 중국 요리까지 다양한 청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1884년 화교들이 인천에 거주하게 되면서 중국음식점들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자장면이 언제, 누구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정식으로 자장면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곳은 1905년 개업한 공화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부두 노동자들이 산둥지방에서 즐겨 먹던 춘장에 국수를 비벼먹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 음식에 자장면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정식으로 장사를 한 음식점이 공화춘이라고 전해집니다.
외형은 어른 주먹만 한 타원형의 빵이지만 손에 쥐고 조금만 힘을 주면 푹 꺼져버리는 공갈빵도 이곳이 원조이며, 국물이 붉은 짬뽕 역시 이곳에서 태어났습니다. 60년대 중반까지 짬뽕 국물의 색은 누런빛을 띠었는데, 손님들은 느끼한 맛을 피하려고 고춧가루를 듬뿍 뿌려 먹었습니다. 그런데 60년대 후반 고추 파동으로 비싸진 고춧가루 대신 고추기름을 조금 넣어 빨간 짬뽕을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영화 <북경반점>의 촬영 장소였던 대창반점을 비롯하여, 영화배우 최민식과 장백지의 매력이 떠오르는 <파아란>의 촬영지였습니다. 또한 차이나타운에서 공자상을 보러 올라가다 보면 오래된 2층 목재 집이 보이는데, 드라마 <내 마음을 뺏어 봐>와 <육남매>의 배경으로 많이 등장했던 곳입니다. 또 차이나타운을 품고 있는 자유공원을 올라가다 보면 길목에서 뜻하지 않게 낯익은 풍경과 마주치게 되는데, 드라마 <피아노>의 촬영지로 수십 개의 좁고 가파른 계단 길 중간에 바로 피아노가 놓여있던 주인공의 집을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찾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젊은이들보다는 고령 주민들이 많아서인지 왠지 이곳에서는 북적대는 활기찬 분위기 대신 걸음도, 시선도, 마음도 모두 느려지는 듯합니다. 역사의 시간 위에서 한국 안의 중국을 만나는 작은 공간,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바다 건너 중국을 바라보며 새삼스럽게 우리나라의 역사를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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