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아름다움/음악

회화적 언어로 그려지는 하늘색 상상력의 향기, 재즈 피아니스트 우미진

난짬뽕 2021. 1. 18. 10:22
728x90
반응형

무심코 듣게 되는 음악이 연주자와 닮아 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재즈 피아니스트 우미진의 음악은 왠지 모르게 그녀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0년 7월 대학로에서 우미진 피아니스트를 만났을 때, 그녀의 피아노 선율이 우미진스럽다는 첫인상을 받았습니다. 길들여지지 않은 상상력을 자신의 음악 세계 안에서 사랑스럽게, 때로는 행복하게 그려가고 있는 우미진 재즈 피아니스트를 만나 봅니다. 

 

 

회화적 언어로 그려지는 하늘색 상상력의 향기

재즈 피아니스트 우미진

 

 

뉴욕과 보스턴에서 6년간의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재즈 피아니스트 우미진. 그녀는 2010년 발표한 1집 <Azure Walk>를 통해 자신만의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선보였다. 특히 연주자로서 뿐만 아니라 작곡가로서 시도하는 다양한 접목들이 매우 주목할 만하다. 한국 재즈계에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킬 재즈 피아니스트 우미진의 재즈 세계로 들어가 본다.

글 엄익순

 

 

하늘색 행복과 희망이 깃든 음악세계를 실현하다

마일즈 데이비스 밴드와 엘빈 존스 밴드에서 활동했던 세계적인 색소폰 연주자인 데이브 리브먼은 우미진에 대해 "아름다운 풍경을 그린 큰 그림을 창조해냈다. 그의 작곡과 연주는 절제되고 절묘하며 다양한 뉘앙스와 표현으로 가득 차 있다"라고 호평한 바 있다. 실제로 2010년 발표된 1집 <Azure Walk>는 풍부한 상상력과 회화적인 구성이 돋보이는 앨범으로, 그녀가 표출해내는 음악적 개성을 만끽할 수 있다. 탄탄한 기본기와 클래식 연주가 바탕이 된 명료하고 빈틈없는 타건을 통해 고전적인 작곡을 현대적 감각의 연주로 펼쳐 보인다. 마치 음악적 실험과 도전으로 습득한 재즈의 언어를 통해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내는 느낌이다. 그것은 곧 새로운 연주를 위한 끊임없는 고민의 기록이기도 하다. 

"음악을 하는 자체가 행복인 것 같아요. 1집은 유학기간 동안 공부하며 느꼈던 것들을 담아낸 개인적인 기록과도 같은 앨범입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특별하게 전하고 싶었어요. 추상적이거나 위대한 말을 건네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의 평범한 일들을 통해서도 삶의 기쁨과 희망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사진 이준용

 

이러한 그녀의 음악관은 앨범 제목에서도 엿볼 수 있다. 1집 앨범의 타이틀곡이기도 한 'Azure Walk'. 이 곡은 인생의 수많은 굴곡 속에서도 우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앞으로 걸어간다는 메시지를 담은 드라마틱한 의미를 은유적으로 담고 있다. 료이치 야마키의 색소폰 연주가 돋보이는데, 가만히 눈을 감고 듣고 있노라면 마치 길을 걷고 있는 나그네가 되어 세상 풍경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여유가 느껴진다.

 

"'Azure'는 하늘빛, 하늘색의, 푸른 하늘을 뜻해요. '푸른 하늘을 걷다', 그 어감 자체에서 이미 희망이 느껴지지 않으세요?"

 

길들여지지 않은 상상력에 매혹되다

버클리 음대(2007년 학사 졸업)와 맨해튼 음대(2010년 석사 졸업)에서 재즈 피아노를 전공한 우미진이 피아노를 처음 접한 것은 다섯 살 때. 젊은 시절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던 어머니와 노래 부르는 것을 즐겨 아마추어 합창단에서 활동하기도 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음악은 그의 가족의 즐거움이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재능이 돋보여 각종 피아노 경연대회에서 입상을 하며 두각을 드러냈고, 선화예중에 진학하게 되어 고향인 청주를 떠나 서울에서 혼자 생활하게 되었다. 그 당시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는 외로움을 감싸주었던 것은 바로 깊은 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들려주는 음악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게 되었는데, 몽환적인 느낌이 마치 저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그 당시 무척이나 좋아했던 라벨이나 드뷔시, 라흐마니노프, 또는 스티비 원더나 마이클 잭슨 등에게서 받은 느낌과는 사뭇 달랐죠. 어떠한 말로 형언하지 못할 정도로 저를 충격에 빠져들게 했어요. 나중에 그것이 팻 매스니의 기타 연주인 것을 알게 되었는데, 아마도 그것이 제가 처음으로 '재즈'를 영혼으로 접한 때인 것 같아요. 재즈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클래식 말고 이런 음악을 한번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죠."

 

재즈를 처음 접했을 때의 설렘을 간직한 채, 우미진은 선화예고에 진학하게 된다. 그러나 마음속 여운으로 남아 있던 재즈에 대한 동경은 그녀가 흑인 재즈 피아니스트의 거장인 오스카 피터슨의 음반을 만나게 되면서부터 다시 두근거리게 되었다. 하루 16시간 이상의 연습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 오스카 피터슨의 연주에서 그의 끓어오르는 열정과 완벽한 기교 뒤에 숨은 예리한 감각, 피아노를 완벽하게 지배하는 그의 흡인력에 매료되었다.

 

그렇게 한동안 잊고 있었던 재즈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이화여대 음악대학에 진학하면서까지 식지 않았다. 결국 피아노를 전공하면서, 대학 2학년 시절 '투파이브'라는 재즈 동아리를 만들게 된다. 그러나 재즈 연주보다는 뮤지션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거나 작품 감상에만 치우치게 되어 그녀의 재즈 세계에 대한 갈증은 더 깊어만 갔다. 2001년 대학을 졸업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전문 연주자의 길을 가면서도, 우미진의 마음 한구석은 늘 재즈에 관심이 기울어져 있었다. 결국 2005년 그녀는 버클리 음대로 유학을 떠나 재즈 피아노를 전공하게 된다. 

 

한국 재즈의 새 얼굴로 미래를 그리다 

잠에서 깨어 있는 시간들은 모두 연습시간이었다. 밤낮없이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했고, 건반 위에서 영감이 떠올라 작품을 탄생시켰다. 뉴욕의 거리를 걷는 것도,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도, 학교에서의 친구들과의 농담도 모두 자연스럽게 음악적 영감으로 되살아났다. 2010년 6월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5년이 조금 넘는 유학생활 동안 모두 30곡을 작곡했다. 클래식 연주자로서 쌓아온 탄탄한 연주 실력은 두말할 나위 없고, 그녀는 1집 앨범에 수록된 10곡 중 'All God's Chillun Got Rhythm'을 제외한 모든 곡을 자작곡으로 구성할 만큼 작곡 실력 또한 빼어나다. 

앨범의 첫 번째 트랙인 'Kandinsky Tells Something'을 비롯해 'Plus plus'나 발라드 곡인 'September Afternoon'에서는 현대적인 재즈의 모습을 들려주는가 하면, 'Aroma'에서는 Udu라는 아프리카 민속 타악기를 사용하여 새로운 소리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재즈의 매력은 그 세계가 열려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어요. 10번을 연주하든, 1000번을 연주하든 모두 다른 색깔을 낼 수 있죠. 이 세상의 모든 악기들을 총동원하여 편곡할 수 있어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고요. 새로운 영역에 대한 탐색을 거부하지 않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재즈에 빠져들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인 것 같아요."

 

 

아직 미발표된 그녀의 다른 작품에서도 새로운 시도는 엿볼 수 있다. 'Tell Me Your Story'는 기타와 피아노의 멜로디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곡으로, 클래시컬한 피아노 연주와 록발라드의 감성적인 사운드를 결합한 잔잔하면서도 애절한 분위기의 작품이다. 또 록 그루브와 반음계를 바탕으로 작곡한 'Whispering'은 섹션마다 달라지는 악기들의 조합 및 연주자들의 개성 있는 즉흥연주가 인상적인 곡이다. 

 

"작곡을 할 때 여러 가지 다른 리듬들, 즉 브라질 삼바나 아프리카의 특이한 리듬들, 그리고 록이나 팝 등의 다른 음악에 관심이 많아요. 그런 리듬이 재즈와 섞여 또 다른 세상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신비스럽죠. 물론 그러한 각각의 요소들을 결합시킬 때에는 간과하지 말아햐 할 것이 있어요. 한 곡의 음악을 구성하는 리듬과 화성, 멜로디 중 세 부분을 모두 강하게 조합시키면 재즈 본연의 모습에서 많이 벗어나게 되어 오히려 듣는 사람들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키죠. 그래서 중요한 것은 이 세 가지 요소 중 어느 한 부분에서 강약을 두는 것이 필요해요. 만약 리듬에 새로운 시도가 결합되었다면 화성과 멜로디는 기본에 충실하자는 것이죠."

 

우미진이 자신의 음악세계에 대한 시야를 넓히게 되고, 연주 형태에 다양한 시도를 접목시키게 된 것은 맨해튼 음대에서 만난 스승인 제이슨 모란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그는 2010년 발표한 <Ten>이 해외 유수의 재즈 저널과 언론매체에서 최고의 재즈 앨범으로 선정된 주목받는 피아니스트이다. 제이슨 모란이 우미진에게 건넨 한마디. "하고 싶은 음악이 무엇이지?"라는 그 질문을 통해, 그녀는 자신만의 음악을 추구하기 위해 고민하게 되었다고 한다. 즉 음악은 형식화된 매뉴얼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상상력에 의해 독창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의 음악적 계획은 앨범마다 악기 세팅을 다르게 해 보는 거예요. 어떤 악기로 요소요소에 적절하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음악의 얼굴이 달라지죠. 1집에서는 색소폰의 음감을 정교하게 그려냈다면, 2집에서는 피아노와 기타, 3집에서는 피아노 트리오, 4집에서는 피아노 솔로로 표현하고 싶어요."

 

재즈와 클래식의 터치를 모두 소화해낼 수 있는 우미진은 회화적인 음악세계를 꿈꾼다. 연주를 통해 듣는 이들이 자신들의 느낌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들의 소소한 일상을 따스한 시선으로 음악 안에 스며들게 한 그녀가 2011년 겨울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음악적 친구이자 인생의 동반자인 남편 역시 재즈 피아니스트인 김주헌. 유학 시절 만난 남편을 위해 'Hello Sweetie'를 작곡하여 선물했듯이, 그녀는 아이를 위해 아이들을 위한 보다 사랑스럽고 행복한 음악도 선보일 계획이다. 

 

한국에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세계를 무대로 자신의 음악세계를 선보이고 싶은 우미진은 재즈가 춤과 공연, 영상 등 다양한 장르와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것을 소망한다. <EBS 스페이스 공감> 무대를 통해서도 '2011 한국 재즈의 새 얼굴'로 그 음악적 깊이와 발군의 가능성을 인정받은 바 있는 우미진. 그녀가 한국 재즈의 미래상에 자신의 독창적인 시공간과 감수성을 그려내고 넓게 채색해가길 기대한다. 

Vol. 48 AUGUST 2011 Music Friends

 

 

재즈보컬리스트 웅산, 오래된 음악의 정원에서 속삭이는 위로의 목소리

 

재즈보컬리스트 웅산, 오래된 음악의 정원에서 속삭이는 위로의 목소리

2015년 사보 <한일>에 실렸던 원고입니다. 재즈보컬리스트 웅산 님과의 인터뷰는 그해 5월 27일 대치동의 어느 커피숍에서 있었는데요. 매체를 통해 바라볼 때도 좋았는데, 직접 만났을 때는 더더

breezehu.tistory.com

재즈보컬리스트 써니 킴, 노래가 풍경이 되다

 

재즈보컬리스트 써니 킴, 노래가 풍경이 되다

재즈보컬리스트 써니 킴을 직접 만나보신다면, 아마도 그분의 매력에 금방이라도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그분의 목소리 안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세계가 그려져 있으니까요. 2016년 비가 내

breezehu.tistory.com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