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나 자신과의 투쟁이다, 김영하

 

어느 시대에나 있어 새로운 것에 대한 수용은 곧 인식의 낯섦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접근은 절대 이해할 수 없다는 무비판적인 거부의사와 더불어 어느 정도의 공존을 허용하는 양극 현상으로 대두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동시대적 이미지를 넘어선다는 것은 곧 새로움에 대한 경계였으며, 결코 호의적이지 못한 예정된 탐색이었던 것이었죠 새로운 조류의 흐름은 또 다른 역사 창조를 위한 전제 조건입니다. 현실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그리고 앞으로의 세계에서 또한 예외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더욱더 높은 이상을 향해 끊임없는 도전을 던지고 있는 그들을, 1998년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New Face라는 이름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문단의 화제가 된 소설가 김영하와 충무로에 출사표를 던진 영화감독 임상수, 발레리나 김지영, 미술가 최우람, 그리고 간호섭 교수까지 그해 가장 뜨겁게 화두 되었던 5인의 인터뷰 중, 김영하와의 만남을 소개합니다. 

 

 

 

새로운 형식에 대한 탐구,

글은 나 자신과의 투쟁이다

김영하

 

 

사진 허성민

 

 

하하, 맞아요. 그러나 그것은 쓰고 싶은 것만 쓸 수 있도록 저를 지탱해 주기도 하지요.  그를 만난 연세대 한국어학당의 1층 로비. 오전 9시부터 네 시간 동안 외국인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는 것은 그의 글쓰기에 있어 충실한 외도다.   

 

아무래도 고정적인 수입이 유지되니까요. 경제적인 문제가 어느 정도 뒷받침된다는 것은 수단이 아닌, 글을 위한 글이 추구될 수 있는 하나의 요소가 되기도 하죠.  전업작가가 아닌,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반으로 할애된 작가로서의 시간에 맞춰 약속을 잡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그는 이번 달부터 하이텔에 연재될 새로운 작품을 구성중이었기 때문에, 학교와 집 그리고 글쓰기만으로 하루 일과를 엮어가고 있었다.   

 

아직 제목은 정하지 못했어요. 여덟 작품 정도로 문학과 지성사에서 준비하고 있죠. 아마도 내년 3월쯤이면, 여러분들께 선보일 수 있을 겁니다.  또한 단편집까지. 그래서인지 그의 주말 또한 작업에 몰두하기 위한, 일체의 만남이 배제되는 금기의 날이다.   

 

주목은 가는데, 선뜻 선정하기에는 왠지 망설일 수밖에 없는 작품이라는 평을 들었어요. 그래서 뭐, 신춘문예에서는 낙선될 수밖에 없었죠. 그래요, 바로 <거울에 대한 명상>.  모든 분야가 다 그러하겠지만, 특히 문학에 있어서의 진보된 한걸음은 그 동시대의 평가에 있어 그리 호의적이지 못하다. 단지 사람들의 관심사에 부응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것은 앞서거나 뒤처지지 않는 반보일 뿐.   

 

표현이 너무 파격적이었나요. 트렁크 안에서의 행위 등이.  나와 아내, 그리고 두 사람을 잇는 또 다른 여성으로 이어지는 이러한 배신의 수사학은 결국 1995년 계간 <<리뷰>>의 봄호에 데뷔됨으로써 본격적인 작품 활동이 시작된다. 다른 작가들의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소재를 인용함으로써 충격을 부여한 <호출>과 <삼국지라는 이름의 천국>을 비롯하여, 그의 빠른 문체 전개에 비해 유독 한 템포 느려진 그리고 가장 많은 미사여구를 사용한 <도드리>와 <도마뱀>, <손>, <총>, <베를 가르다>, <전태일과 쇼걸>, <나는 아름답다> 등의 단편이 모아진, 그리고 제1회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장편소설 등 그의 이름으로 서점에서 만날 수 있는 책은 단지 2권에 불과하다. 물론 각종 문학지나 계간지에 발표된, 그리고 컴퓨터 통신망으로의 접속을 배재한다면.   

 

글쎄요. 올 한 해 제가 한 일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그러나 많은 평론가와 출판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는 모두 김영하라는 작가에게 집중된 것이 사실. 또한 어떤 이는 아주 오랜만에 그를 통해 소설 읽는 재미를 맛볼 수 있었다고도 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제목을 지운 채, 단지 본문만을 접하게 되었을 때 그 작가를 확실히 구별할 수 있는 작품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얼마 전 '넘버 3'이라는 영화는 저에게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소설에서 느끼고자 하는 서사적 욕망이 이러한 영화와 같은 장르로 떠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 창작 시나리오는 너무나 과감했죠. 가볍게 내뱉는 한마디 속에서도 감각을 느낄 수 있었어요. 단지 독자들의 감성에만 호소하는 나태한 글쓰기는 본격소설에 대한 애정을 다른 매체로 빼앗길 수 있는 우려를 초래합니다. 그리고 그것의 가장 큰 위험은 바로 문학의 정체성에 대한 붕괴죠.   그의 작품에 대한 첫인상은 낯설음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살아있는 문체로서의 변별력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생각의 반역이나 도전이 내재되어 있는 그의 작품들이 그리 쉽게 익숙되지 않을 수도 있다. 사건 전개에 있어서의 실마리를 유도하는 인과에 대한 절차도 단지 불필요한 부연에 불과한 듯하며, 내면을 자극하는 화려한 미사여구도 그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듯하다. 연결어미조차 생략된 너무나 건조하리 만큼 짧은 문장과 감정이 완벽하게 배제된 그의 구성은, 그러나 그 치밀함만으로도 허구적 설정을 망각하게 할 만큼의 서술적인 힘이 동반된다. 

 

물론 저에 대한 존재가 그리 잘 인식되지 못했던 2~3년에 비해 많은 제약이 뒤따르는 것은 사실이에요. 그러나 그것은 바로 제 자신과의 갈등일 뿐이죠. 새로운 형식에 대한 탐구, 기존의 제 소설들과 비슷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 바로 그것이죠. 마치 안일한 마음에서 도발되는 현실에 대한 안주 같은 것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책임감과도 연결될 것 같군요. 나마저 잘 쓰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미술과 기술, 역사서와 같은 특히 모든 지식의 산실인 백과사전을 가장 즐겨 본다는 그는 소설 외적인 것들에 대해 더 많은 흥미가 있는 듯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러한 모든 것들이 바로 소설을 엮어가고 있는 충실한 하위 개념들이 아닌가. 내면에서 축척된 이러한 폭넓은 상식들은 그의 작품에 있어서 두드러지게 사용되는 중문을 통해 그대로 표출된다. 방대한 독서량이 기반되지 않고서는 좀처럼 흉내 낼 수 없는 그러한 요소는 또 다른 책 읽기의 재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군요. 저는 중성적인 면이 강한 것 같기도 하니까요. 그래서인지 액세서리나 패션, 디자인 등에 대한 관심도 적지 않거든요.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된 화자는 남성이다. 그러나 그 흐름의 맥은 여성의 심리와 행동으로 주도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심리주의 비평으로 접근해 볼 때, 그의 말대로 작가의 사고관과 결코 무관되지는 않은 것이다. 

 

그 책 <호출>에 실린 작품들을 역으로 읽어보신다면, 아마 제 작품 경향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으실 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나의 단편인 경우에는 보통 7~8시간, 저녁에서 새벽까지면 작업이 마무리되죠. 그러다 보니, 마무리에 가서는 너무 성급히 펜을 놓으려는 나른함이 밀려오곤 해서.  그의 최근작들과 비교해 볼 때, 초기 작품들에게서 느끼게 되는 아쉬움은 바로 급격한 반전이다 물론 그것은 또 다른 의미로서의 절정이라는 뜻이 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급반전. 단지 결말이라는 아주 작은 공간 안에서 너무나 많은 말을 하려고 하는 욕심 때문에, 오히려 그가 고수하던 형식에 있어서의 모순이 제기되는 소지를 던져주고 있다. 또한 '~는 없다', '~답다'라는 단정적 어휘의 범람을 통해 작가의 의식을 읽는 사람에게 강요함으로써, 독자 스스로의 사고의 폭을 축소시키고 있다는 느낌 역시 적지 않았다. <거울에 대한 명상>의 경우에는 그 집필 시간이 4~5시간 밖에 소요되지 않았다니.

 

너무 빠르다고요? 하지만 글을 쓸 수 있는 그 하루를 위해 준비되는 며칠, 몇 개월이 너무 길죠. 전화도 받지 않고 사람도 만나지 않으면서, 조금씩 삶의 에너지를 소멸해 놓죠. 하지만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글을 쓰는 그 하루가 잘 오지는 않습니다.  작가는 글로써 말한다. 그리고 독자는 그것을 통해 작가를 읽는다. 따라서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가 김영하. 왠지 1990년대와 가장 가깝게 여겨지는 그의 작품들에 대해 그리 많은 말은 필요치 않을 것 같다. 그의 글쓰기에 대한 평가는 지금의 우리보다는, 10년 아니 그 이후의 또 다른 이들에게 부여된 특권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때를 관조적으로 지켜볼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 그의 작품들을 빠짐없이 읽어두는 것만이, 지금 우리들이 행하여야 할 가장 큰 준비인 듯하다. 

 

 

사진 허성민 /  점심을 함께 먹고 난 후, 연대 강의실에서 한참동안 칠판에 낙서를 하면서 그와 사진기자와 함께 놀았던 기억이 난다. 분필을 갖고 생각나는대로 글씨를 쓰는 것만으로도 우리들은 웃고 또 웃었다. 그때 우리들은 모두 젊었고, 상상으로 꽃피는 자신의 꿈 이야기들을 나누며 서로 격려했고 행복해했다. 지금 우리들은 함께 말했던 그때의 그 꿈들을 어느 정도 이룬 것일까. 

 

 

김영하

1968년 경북 고령 출생. 연세대 경영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95년 계간 <<리뷰>> 봄호에 <거울에 대한 명상>으로 데뷔,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들어간 그는 현대문명이 초래한 심각한 나르시시즘에서부터 죽음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주제와 다양한 형식으로 새로운 감각에 대한 묘미를 펼쳐 보이고 있다. 특히 1996년에는 도시적 감수성으로 위장된 죽음의 문제와 세기말의 악마주의적 심성을 판타지 양식으로 전개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작품으로 제1회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하였다. 그 책의 표지는 검은색. 독자들의 눈을 유혹하기는 하나, 소유 욕구를 충족시키지는 못한다 하여 판매 도서로서는 거부 성향이 짙은 그 색은, 결국 그의 강한 고집으로 감행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그리 비판적이지 만은 않을 정도로 적당히, 그리고 꾸준히 독자들에게 선택되고 있다. 앞으로 발표되는 그의 신간에는 어떠한 모습의 실험정신과 모험이 시도될까. 다시 한번 기다림을 전제로 그를 생각해본다. 

글 엄익순

IN Korea Magazine

DECEMBER 1998 Number 3

 

 

새로움에 대한 경계를 넘어서다

참을 수 없는 내 존재의 불완전함, 글렌 굴드

정글의 세계에서 음악을 설계하는 창조의 마법사, 작곡가 강석희

독주 악기로의 더블베이스의 도전, 더블베이시스트 성민제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영혼으로 교감된 완전한 위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