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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너머/작은 이야기 114

마거릿 생스터, 하지 않은 죄

하지 않은 죄 당신이 하는 일이 문제가 아니다. 당신이 하지 않고 남겨 두는 일이 문제다. 해 질 무렵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 그것이다. 잊어버린 부드러운 말 쓰지 않은 편지 보내지 않은 꽃 밤에 당신을 따라다니는 환영들이 그것이다. 당신이 치워 줄 수도 있었던 형제의 길에 놓인 돌 너무 바빠서 해 주지 못한 힘을 북돋아 주는 몇 마디 조언 당신 자신의 문제를 걱정하느라 시간이 없었거나 미처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사랑이 담긴 손길 마음을 어루만지는 다정한 말투. 인생은 너무 짧고 슬픔은 모두 너무 크다. 너무 늦게까지 미루는 우리의 느린 연민을 눈감아 주기에는. 당신이 하는 일이 문제가 아니다. 당신이 하지 않고 남겨 두는 일이 문제다. 해 질 무렵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 그것이다. _..

때로는 밥 한 끼가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올 때면

지난주 금요일 갑자기 예기치 못한 업무가 생겼고, 토요일 아침부터 회의를 시작으로 엊그제까지 일을 마무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간이 촉박하여 며칠 밤을 새기도 했다. 요즈음 뜻하지 않게 자꾸만 밤샘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재충전이 필요했다. 며칠 휴식시간을 갖게 되었고, 마침 남편도 휴가를 냈다. 우리는 아침 일찍 아빠가 계신 시골로 향했다. 항상 그랬다. 몸과 마음이 지칠 때면 늘 부모님 곁으로 갔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무슨 힘을 얻는 것 같았다. 특별한 말씀을 듣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먹고 나면, 다 괜찮아졌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우리는 엄마의 밥상이 늘 그립다. 이제 엄마의 맛있는 음식들은 그리움 속에서만 만날 수 있게 된 지금. 하늘에 계신 시부모님과 ..

남편의 뒷모습을 담다

지난 10월 중순, 남편과 나는 주말에 인왕산에 올랐다. 어느 토요일에는 3코스를 돌았고, 다음날 일요일에는 2코스를 둘러보았다. 창의문 방향으로 내려오면서 한 컷. 이곳이 정상보다 더 멋있는 포토존인 것 같은데. ㅎ 성곽길을 따라~~ 정상에서 하산하는 길이다. 햇살이 좋아서~~ 무악재 하늘다리로 내려와 지하철역을 향해~~ 홍지문 탕춘대성을 지나 용천약수터로 가는 길. 출렁이는 가온다리를 건너~~ 무악공원을 지나며~~ 이제 핸드폰을 볼 때에는 안경을 살짝 올리게 된 나이. 남편과 함께한 지 어느덧 22년이 흘렀다. 저 계단만 올라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이다. 인왕산 정상을 바라보며~~ 저 사이를 나는 지나갈 수 있을까~~ ㅎㅎ 무무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서울 야경이 멋있다던데~~~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는..

그리운 미래, 그대로 두면 그대로 되지 않는

그리운 미래, 그대로 두면 그대로 되지 않는 그리운 미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기분좋은 소식이 있다'는 문장이 떠올랐다. 미래의 일이 그립기도 하고 받은 적 없는 행복이 미리 만져지기도 하는 걸까. 어린이 병원에서 일할 때 한 아이와 자주 창밖을 내다보곤 했다. 비가 오지 않는 날도 장화를 신고 다니는 친구였다. 우린 창가에 앉아 기차가 오가는 걸 바라보거나 비행기가 지날 때를 기다렸다. 기다리면 기차와 비행기는 어김없이 지나갔고 아이는 기뻐했다.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이라 여겼던 나도 기차가 달리면, 비행기가 날면 어느새 기쁨을 느끼게 됐다. 무엇이 사람을 기쁘게 할까. 지루한 기다림이 아니라 간절한 기다림이라야 할까. 그렇다면 시 쓰는 나의 기쁨은 어디만치 달아났을까. 당도하지 않은 일을 그리..

피천득/ 이 순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확행

이 순간 피천득 이 순간 내가 별들을 쳐다 본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 오래지 않아 내 귀가 흙이 된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제 9 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 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 그들이 나를 잊고 내 기억속에서 그들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 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즐거운 사실인가 두뇌가 기능을 멈추고 내가 손이 썩어가는 그 때가 오더라도 이 순간 내가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어찌 하지 못할 사실이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의미를 지닌 이라는 말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 어휘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30여 년 전에 펴낸 에세이집인 에 처음 등장했는데요. 그는 이 책에서 소확행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갓 구운 따끈한 ..

당신에게도, 열두달의 친구이고 싶다, 시인 이해인 수녀

열두달의 친구이고 싶다 시인 이해인 수녀 1월에는 가장 깨끗한 마음과 새로운 각오로 서로를 감싸줄 수 있는 따뜻한 친구이고 싶고 2월에는 조금씩 성숙해지는 우정을 맛볼 수 있는 친구이고 싶고 3월에는 평화스런 하늘 빛과 같은 거짓없는 속삭임을 나눌 수 있는 솔직한 친구이고 싶고 4월에는 흔들림없이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으로 대할 수 있는 변함없는 친구이고 싶고 5월에는 싱그러움과 약동하는 봄의 기운을 우리 서로에게만 전할 수 있는 욕심 많은 친구이고 싶고 6월에는 전보다 부지런한 사랑을 전할 수 있는 한결같은 친구이고 싶고 7월에는 즐거운 바닷가의 추억을 생각하며 마주칠 수 있는 즐거운 친구이고 싶고 8월에는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힘들어하는 그들에게 웃는 얼굴로 차가운 물 한 잔 줄 수 있는 여유로운 친..

기인지우, 쓸데없는 걱정으로 인생을 낭비한다면

쓸데없는 걱정으로 인생을 낭비한다면 기인지우 '쓸데없는 걱정'을 의미하는 "기우"라는 말은 '기인지우'라는 고사성어에서 유래된 것인데요. 기인지우(나라 이름 기, 사람 인, 갈 지, 근심 우) 주왕조 시대에 기나라에 쓸데없는 무익한 근심을 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만약 하늘이 무너지거나 땅이 꺼진다면 몸 둘 곳이 없지 않은가, 하는 걱정을 하느라 밤에 잠도 이루지 못하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요.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친구가 걱정이 되어 그에게 말했습니다. "하늘은 (공)기가 쌓였을 뿐이야. 그래서 기가 없는 곳이 없지. 우리가 몸을 굽히거나 펴는 것도, 그리고 호흡을 하는 것도 늘 하늘 안에서 하고 있는 것이지. 그런데 어떻게 하늘이 무너져 내린단 말인가, 친구." "하늘이 과연 기가 쌓인 ..

정현종/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정현종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지난 주말에 남편과 함께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다가 찍은 사진들입니다. 그냥 예뻐서 몇 장 사진에 담아본 것인데, 오늘 다시 보니 또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정현종 작가의 '모든 순간이 꽃..

눈물 반 웃음 가득, 귀엽고 사랑스러운 결혼식

눈물 반 웃음 가득, 귀엽고 사랑스러운 결혼식 토요일이었던 어제, 정말로 오래간만에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작년 이맘때 즈음에 예식장에 다녀왔으니, 거의 일 년 만인 것 같습니다. 그 사이 장례식장에는 모두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많은 발걸음을 남겼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우울했던 팬데믹 시대가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한 살 한 살 세월의 흔적들이 더해갈수록, 이상하게도 감출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눈물'이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특히 이러한 감정의 솔직함이 그리 잘 어울리지 않는 결혼식장에서 신랑 신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쏟아져 나오는 것이 참 어이없게 느껴지기까지 하지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결혼식장에서 눈물이 툭 튀어나올 때가 많아졌습니다. 오늘도 바로 그런 날이었습니다...

도종환 시집 <당신은 누구십니까> 중에서, 빛깔

빛깔 봄에는 봄의 빛깔이 있고 여름에는 여름의 빛깔이 있다. 겨울 지등산은 지등산의 빛깔이 있고 가을 달래강에는 달래강의 빛깔이 있다. 오늘 거리에서 만난 입 다문 이 수많은 사람들도 모두 살아오면서 몸에 밴 저마다의 빛깔이 있다. 아직도 찾지 못한 나의 빛깔은 무엇일까 산에서도 거리에서도 변치 않은 나의 빛깔은. 도종환 , 창비, 1993 미세먼지가 자욱했던 오늘 문득 도종환 시인의 '빛깔'이라는 시가 떠올랐습니다. 1993년 창작과비평사에서 발표된 라는 시집에 들어있는 시이기도 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고, 다시 어김없이 봄은 왔는데, 가끔씩 나의 빛깔에 대해 궁금해질 때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도, 학창시절에도, 젊음이 지나갈 때에도 고민했던 그 빛깔에 대해서 이렇게 어른이 된 지금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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