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아름다움/음악

건반 위의 시인, 피아니스트 김영호

난짬뽕 2021. 5. 23.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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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반 위의 시인,

열정으로 빚는 음악축제를 꿈꾸다

피아니스트 김영호

 

음악이 우리들에게 선사하는 또 하나의 선물은 많은 이유로 인한 혼잡한 마음을 정화시켜 준다는 것이다. 피아니스트 김영호 교수는 생활 속에서 보다 쉽고 친숙하게 음악을 만날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봄이 무르익는 5월의 길목에서 꽃보다 더 향기로운 음악의 향연을 만나보자.

글 엄익순

 

 

항상 음악을 품에 안고 준비하라

1978년 줄리아드 음대 4학년생이었던 김영호에게 한국에서 급히 연락이 전해졌다. 시향과 협연 예정이었던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사정으로 인해, 협연자가 바뀌게 된 상황이었다. 연주회 일주일 전, 작품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G장조였다. 소식을 받자마자 귀국길에 올랐고, 그의 연주는 음악계의 호평을 받았다. 

 

사진 이준용

 

"연주회가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연락을 받았지만,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오히려 좋은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라는 감사한 생각이 들었지요. 더구나 연주해야 할 작품이 제가 평소에 즐겨 연습하던 곡이었기 때문에 반갑기도 했습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는 지금도 항상 제자들에게 아무리 바쁘거나 힘들어도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만이 좋은 연주자가 되는 길이라고 당부한다. 누구에게나 예기치 못한 기회가 주어졌을 때,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그것을 통해 또 다른 세계로 도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 살 때, 친척집에 놀러 갔다가 피아노를 처음 보고는 신기한 마음에 직접 배우게 되었다는 김영호의 피아노 인생은 화려하다. 코슈즈코 쇼팽 콩쿠르와 헬렌 하트 국제 콩쿠르, 프리나 아워버크 국제 콩쿠르 및 아스펜 음악제, 줄리아드 음대, 맨해튼 음대 협주곡 오디션, 필라바요나 국제 콩쿠르, 리더 크란츠 국제 콩쿠르, 포르토 국제 콩쿠르 등에서 우승하며 세계 음악계에 그 실력을 각인시켰다. 그의 연주는 현학적이거나 권위적이지 않다. 지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섬세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여운이 느껴지는 색채이다. 그의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화선지에 묵향이 스며들 듯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낀다. 쇼팽 연습곡 전곡 녹음 외에 모스크바 필하모닉, 체코 내셔널 심포니, 영국 필하모니아 교향악단 등과 작업한 음반도 음악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연주 실력은 세계가 놀랄 만큼 뛰어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나치게 입시 공부를 하다 보니 연주 레퍼토리가 부족하여 다른 곡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요즘에는 미디어의 발달로 연주 스타일 역시 대부분 비슷해지는 경향이 나타나고, 때로는 무조건 빨리 연주하거나 피아노 앞에서 눈에 띄는 행동을 하는 것이 실력인 양 생각하는 학생들이 종종 있습니다. 물론 연주자가 자기만의 색깔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연주는 기존의 작품을 이해하고, 그 음악적 언어를 자신만의 언어로 바꾸는 노력이 뒷받침됐을 때 비로소 그 연주자의 소리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이 되고, 깊이 있는 연주가 나올 수 있습니다. 기교적으로 현혹시키는 것은 재미를 줄 수는 있지만, 감동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지 않습니다. 만약 전문 연주자를 꿈꾸는 학생들이라면, 지금부터라도 자신의 음악적 언어에 대해서 고민해봐야 합니다. 그 고민의 시작은 바로 연습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요."

 

음악적 교감, 이제 시야를 넓히자

우리나라의 음악교육은 언제부터인가 영재나 전문 연주자를 양성하는 데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지는 않았을까. 점수를 잘 받기 위해, 혹은 콩쿠르에서의 입상만을 목표로 삼는다면 정작 음악을 즐기는 사람은 되지 못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음악은 감정의 표현을 서로 나누는 것인데, 그 진정성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현재 한국의 피아노 음악은 정말로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국제 콩쿠르에서의 입상 소식이 그것을 증명해주죠. 또한 영재 피아니스트들도 많아졌고요. 그런 반면 음악계의 전체적인 수준은 어떠한지 한번 되돌아봐야 합니다. 전문 연주자를 배출해내는 것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졸업 후 진로까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그의 제자 중 미국 유학을 간 한 제자는 자신이 직접 후원자를 찾아 음악회를 개최하여 연주하고, 아티스트를 발굴해서 직접 매니지먼트까지 하는 등 스스로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개척해나가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학위로만 직업을 얻을 수 있는 시대는 갔다. 음악교육을 받는 학생들의 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스스로 미래를 개척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음악을 전공하면서도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과 지식을 갖춰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전공을 바탕으로 방송계에 진출할 수도 있고, 큰 도시가 아니더라도 작은 동네에서 문화행사를 만들어 진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꼭 전문 연주자가 되거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음악을 발판 삼아 이 사회에서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공간에 구애받지 말고, 편견도 버리고요."

 

그는 전문 연주자를 꿈꾸는 학생과 학부모들에게도 조언을 던진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서도 좌절하지 않고 극복할 수 있는 열정을 갖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반문해보라고 한다. 단지 막연한 욕심만 갖고, 안일한 생각을 갖고 있다면 어쩌면 그들은 인생의 시간을 허비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저는 우리나라에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구미 국제음악제나 서울 스프링 실내악 축제 같은 문화행사들이 정말 더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한 지역 행사를 통해 졸업생들의 연주 영역도 넓어지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음악을 통한 직업도 세분화되어 보급될 수 있으니까요. 유명한 무대에 서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마치 야구장에 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음악행사가 많아지면 그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닐까요."

 

그는 6월에 쿠바에서 독주회가 있다. 스승이었던 솔로몬 미코프스키 교수가 자신의 고향인 작은 마을에 페스티벌을 만들어 제자들과 함께 음악축제를 펼칠 예정인데, 그는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참여하기로 약속했다. 세계적인 무대뿐만 아니라, 소소한 일상에서의 연주회 역시 그에게는 값진 선물이며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피아니스트 김영호가 있는 풍경은 늘 따뜻하고 아름답다.  

 

대중에게 다가가는 클래식 음악제

연세대 교수인 김영호 피아니스트는 솔리스트로서뿐만 아니라 실내악 연주자로도 관객들과 꾸준히 호흡해왔다. 특히 2012년에는 '구미 국제음악제'의 음악감독으로 돋보이는 연출을 선보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구미시에서 100% 지원을 받아 펼쳐지는 음악제인 만큼, 시민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장이 될 수 있도록 정성을 기울인 것이다. 클래식 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청중들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낯익은 작품으로 구성했고, 전 악장이 아닌 일부 악장을 선별해서 듣는 사람들이 지루하지 않게 배려한 점도 색달랐다. 

"클래식 음악이 대중에게 보다 친숙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구미 국제음악제가 추구하는 가장 큰 의미가 될 것입니다. 좋은 연주를 통해 즐거움을 느끼면, 자연스럽게 클래식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지 않을까요."

 

정해진 기간 동안 집중해서 음악에 심취할 수 있다는 매력이 음악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관령 국제음악제는 여름 휴양지에서 연주와 교육이 함께 이뤄지는 것이 특징이고 아름다운 바다와 함께 펼쳐지는 통영 국제음악제는 다양한 외국 연주 단체가 내한하여 현대음악을 탐구하는 것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한 가운데 구미 국제음악제는 시민과 클래식 음악이 좀 더 가까워져 즐거운 음악회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이화 경향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12세에 도미하여 뉴욕에서 콜롬비아 예비학교와 줄리아드 음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맨해튼 음대에서 엘바 반 겔더 장학생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영호는 고국의 훌륭한 연주자 양성을 위해 1989년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제자들이 스스로 음악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갖고 애착을 느낄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동기를 부여해 주었다. 한편 소중한 음악 친구들과 함께 연주하는 것을 좋아하여, 1999년에는 '서울 챔버 뮤직 소사이어티'를 창단하였다. 이는 우리나라에 실내악 연주가 발전할 수 있게 되는 출발점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모지였던 국내 실내악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 것은 물론, 매년 스페인 아로나 국제 음악 페스티벌의 상주 앙상블 팀으로도 활동하면서 클래식 음악계의 이목을 모았다. 

 

이러한 '서울 챔버 뮤직 소사이어티'의 괄목할 만한 성과의 연장선상에서 또 하나의 획을 그은 것이 바로 '서울 스프링 실내악 축제(SSF)'이다. '음악을 통한 우정'이라는 이상을 기반으로 2006년 첫선을 보인 이후, 지금까지 해마다 봄을 알리는 음악의 향연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김영호는 이 축제의 모든 프로그램과 기획을 포함한 전 과정에 참여하며, 무대에서도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준다. 

 

"올해로 제8회를 맞이하는 서울 스프링 실내악 축제의 프로그램은 세계의 음악제와 비교해도 손색없을 만큼 레퍼토리가 빼어나고, 참여하는 음악가들 역시 최고의 연주자들입니다. 매년 예술을 통한 사회적인 소통과 공헌을 꿈꾸고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한 일이지요." 

 

5월 14일부터 26일까지 'Far From Home(타향살이, 고향생각)'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서울 스프링 실내악 축제는 약 50여 명의 세계적인 아티스트들과 실내악단, 오케스트라, 국악팀 등이 함께 어우러지는 음악축제가 될 것이다. 

Vol. 69 MAY 2013 Music Friends

 


피아노 연주자로서, 그리고 스승으로서도 존경받아온 피아니스트 김영호 교수는 1995년부터 재직해온 연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올해 정년을 맞이하여 퇴임을 하시게 됩니다. 학교생활을 마무리하고, 오래 몸담은 학교를 떠나게 되는 작별 인사를 대신하는 독주회가 지난 3월에 있었습니다. 퇴임 후에는 친구들과 함께 모여 음악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는 김영호 교수님의 피아노 연주가 내내 그리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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