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일인자를 만든 위대한 이인자
스티브 발머
1등의 신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일인자의 그늘에서 온갖 힘을 기울여온 이인자들. 그들은 일인자들 보다 능력이 부족해서 이인자가 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자발적이고 전문적이며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영광의 일인자 곁에는 늘 위대한 이인자가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를 충실히 보좌했던 스티브 발머, 중국 혁명의 불을 지핀 지도자 마오쩌둥을 위해 미련 없이 주연의 자리를 내준 저우언라이, 위험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일인 줄 알면서도 국가 원수 트루먼의 명령에 따라 중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선뜻 앉았던 조지 마셜, 명석하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빌 클린턴 대통령 곁을 충직히 지킨 앨버트 고어 부통령, 그리고 소설 속 인물로서 파트너 셜록 홈스를 위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환상의 팀워크를 펼친 왓슨 등 역사 속의 일인자 곁에는 언제나 그들을 최고로 만든 이인자가 함께 한다.
리더의 꿈을 실현시킨 스티브 발머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가 만난 것은 하버드의 기숙사에서 생활할 때였다. 사교적인 성격의 발머는 영리하지만 매사에 따분해하던 내성적인 성격의 게이츠와 함께 가끔 뉴욕으로 외출하기도 하고, 그를 폭스 클럽에 가입시켜 사교계의 일원으로 만들었다. 1975년 게이츠의 고교 동창 폴 앨런이 하버드를 중퇴하고 마이크로컴퓨터 소프트웨어 사업을 시작하면서 게이츠에게 같이 일하자고 설득했고, 결국 그들은 그 회사를 마이크로소프트라 이름 짓고 일을 시작했다.
한편 학부생 대상의 푸트남 전국 수학경시대회에서 게이츠를 앞지른 적도 있었던 발머는 하버드를 졸업한 후 소비자 마케팅 부문에서 경험을 쌓기 위해 P&G에서 2년 동안 일한 뒤, 스탠퍼드 비즈니스 스쿨에 들어가 학업에 정진한다.
그즈음 게이츠는 발머에게 급속히 성장하고 있던 마이크로소프트에 합류할 것을 권유하는데, 발머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학교를 중퇴한 뒤 연봉 4만 달러와 마이크로소프트 8.75퍼센트의 지분을 받는 조건으로 입사한다. 경영 부문에 꼭 필요한 명민하고 능력 있는 비기술직 인물이었던 발머는 1980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프로그래머가 아닌 최초의 직원이 된 것이다.
게이츠는 처음부터 발머에게 광범위한 업무를 맡겼는데, 입사와 동시에 인력 채용 담당자가 되어 우수한 학교에서 많은 보수가 아닌 스톡옵션제로 신입사원들을 유치했으며, 지식과 추진력을 가진 사람들을 찾았다. 또한 시애틀 컴퓨터 제조회사의 운영체제인 QDOS(간이 운영체제)를 5만 달러라는 낮은 가격에 구입하는 일도 맡았는데, 이 시스템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성공의 핵심이 되었다.
발머는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모든 일을 강력히 진행시켰는데, 그러한 그의 열정은 게이츠의 리더십과 마찬가지로 마이크로소프트를 놀라운 회사로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빌 게이츠가 새로운 시장을 찾으려 할 때 스티브 발머는 새로운 시장을 지배할 방법을 찾아냈다. 게이츠가 원대한 전략가라면, 발머는 전술의 명수라고 비유된다.
25년 동안의 게이츠와의 파트너십에 대해 발머는 마치 자신들의 관계가 결혼생활과도 같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발머를 게이츠의 또 다른 자아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의견이 항상 일치되었던 것은 아니다. 발머는 당시 30명을 고용하고 있었던 신생회사에 추가로 17명을 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게이츠는 그렇게 하면 회사가 파산할 것이라며 몇 시간 동안 격렬히 논쟁했다. 게이츠와 같은 집에 살고 있던 발머는 몹시 화가 나서 결국에는 집을 나가버렸다. 다행히 게이츠의 아버지가 두 사람을 진정시켰고, 다음날 발머는 신규사원 채용에 대한 동의를 얻어냈다고 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공이 오직 빌 게이츠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많은 사람들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공은 발머 덕분이라고 한결같이 말한다. 실제적인 주요 업무를 담당한 핵심인물이었던 발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사장이자 최고 전략가였으며, 윈도즈 운영체제 선적부터 초일류 인력 공급까지 모든 부문을 책임졌던 사람이다. 오히려 빌 게이츠보다 더 마이크로소프트의 성장에 기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전 임원이었던 에이드리언 킹은 "마이크로소프트는 빌 게이츠 없이도 경영될 수 있다. 하지만 스티브 발머의 성공하려는 노력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게이츠와 발머는 최고의 동료였으며, 가장 좋은 친구였다. 몇 년 전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라는 광고 카피가 있었다. 급속한 변화의 물결에 휩싸인 현대사회에서 1등이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던 광고로 기억한다. 그러나 영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명예를 누리는 1등 뒤에는 언제나 그 성공을 이루기 위해 함께 땀 흘렸던 또 다른 사람의 그림자가 있다. 그들을 사람들은 위대한 이인자라고 말한다.
▶ 숫자 2의 이야기입니다
'시선 너머 > 볼록 렌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할 것인가 (91) | 2021.05.28 |
---|---|
위험한 침입자, 노화 (48) | 2021.05.27 |
희망의 주술, 노랑 (90) | 2021.05.24 |
탄생의 아픔으로 피어난 아름다움, 흑진주 (26) | 2021.05.24 |
습한 공간의 최대의 적, 곰팡이 (60) | 2021.05.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