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은 날씨 같은 것이라고
어떤 날은 아침에 눈이 번쩍 떠지는 게 힘이 펄펄 나는가 하면 또 어떤 날은 몸이 진흙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때가 있습니다. 몸이 힘들면 마음이 가라앉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날씨 같은 거라고 여기면 되는 거예요. 바람 불다, 비가 오다 그러다 햇살이 비추기도 하는 거거든요. 또 그러다 흐리기도 하고. p 15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는 SBS 파워 FM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에서 들려준 글들을 모은 책입니다. 1977년 록 밴드 '산울림'으로 데뷔한 김창완은 1978년부터 꾸준히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는데요. 그중 23년을 함께한 이 방송에서 그는 마음을 빌려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찌그러진 일상에서 작은 희망을 발견하기를 바라는 취지에서 따뜻한 말 한마디 전하고 싶고, 체온이 느껴지는 글을 띄우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을 전하고 있는데요. 그래서인지 모두 5장으로 건네고 있는 각각의 글들이 마치 짧은 안부인사처럼 느껴지는 듯합니다.
1장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 2장 준비된 어른보다는 늘 새로운 어른, 3장 당신이 외롭지 않았으면 합니다, 4장 미워했던 나를 용서하는 일, 5장 이별을 계획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서...... 의 모든 글들은 읽는 이들에게 "부디 안녕하시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순서에 상관없이 책장을 펼쳐도 좋고, 뒤에서부터 읽어가도 상관이 없습니다.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
- 김창완 에세이
- 지은이: 김창완
- 초판 1쇄 발행: 2024년 3월 28일
- 브랜드: 웅진지식하우스
준비된 어른보다 늘 새로운 어른이기를
심지 굳고 단단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떡하면 될까요? 스스로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어른이 되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이상적인 어른에 관한 환상 또는 착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이들은 다 천진하고 사랑스럽기만 하다는 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른들이 다 지혜롭고 심지가 굳다고 여기 지도 않습니다. 흔들리는 어른의 모습도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준비된 어른이 되기보다는 늘 새로운 어른이길 바랍니다. p 71
마음은 한 번도 햇볕을 못 쬐고
가을 길을 달리면서 '가슴에도 창문 하나 낼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머릿결을 스치는 바람은 시원한데 가슴은 답답한 거예요. 이럴 때 마파람 들어오게 들창을 열어놓을 수 있으면 좋잖아요. 그러고 보니 마음은 태어나서 한 번도 햇볕을 못 쪼였네요. 그렇게 수십 년 쌓았으면 그런 어지러운 방이 없을 텐데~~~. 오늘 아침에도 들여다보니 거의 빈방입니다. 약간의 후회와 희미한 기다림과 웅크린 희망 정도가 있을 뿐입니다. 맞아요. 잊는 게 마음 청소입니다. 망각이야말로 마음의 환기예요. 그때그때 비워내는 게 맞아요. p 274
이 책을 읽는 동안 산울림의 대표곡들인 '아니 벌써'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청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너의 의미' '그대 떠나는 날 비가 오는가?' '안녕' '찻잔' '개구쟁이'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 등을 함께 들었습니다.
지난주 토요일까지만 해도 무더운 여름날씨였는데, 일요일과 어제에 이어 오늘까지도 비가 내리며 기온이 내려갔네요. 음악 활동과 방송 진행자, 배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창완은 시간과 세월 속에서 한 순간도 고여 있지 않은 "늘 새로운 어른"이라는 수식어를 갖고 있기도 한데요.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는 그가 써 내려간 생각들은 왠지 비가 내리는 날에 읽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창완의 또 다른 에세이로는 <이제야 보이네> <안녕, 나의 모든 하루> 등이 있고요. 소설집 <사일런트 머신, 길자>와 동시집 <무지개가 뀐 방이봉방방>, 그리고 그림책으로는 <개구쟁이>라는 책이 있기도 합니다. 이 책의 제목인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에 관한 에세이가 궁금하실 것 같아, 마지막으로 소개해드립니다.
그저 다 찌그러진 동그라미입니다
어느 날 라디오에 직장 생활 스트레스로 살이 빠졌다는 사연이 왔습니다. 뼈가 드러나게 살이 빠졌다니 제가 다 안쓰러운 기분이 듭니다. 근데 너무 예민하셔서 그런 것 같아요. 완벽주의 거나요. 세상살이라는 게 그렇게 자로 잰 듯 떨어지지 않습니다. 좀 여유롭게 생각하세요. 제가 지금부터 동그라미를 여백이 되는 대로 그려보겠습니다.
마흔일곱 개를 그렸군요. 이 가운데 v 표시한 두 개의 동그라미만 그럴듯합니다. 회사 생활이란 것도 47일 근무 중에 이틀이 동그라면 동그란 것입니다. 너무 매일매일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동그라미를 네모라고 하겠습니까, 세모라고 하겠습니까? 그저 다 찌그러진 동그라미들입니다. 우리의 일상도. p 21
찌그러졌다고 실망할 것도 없지요
저는 거의 매일 동그라미를 그립니다. 라디오 오프닝 멘트를 읽고 나면 원고 뒷면에 그리지요. 제법 그럴듯한 원이 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찌그러진 동그라미입니다. 그럼 종이도 아깝고 하니 몇 번 더 그리고 다른 이면지에 또 그려요. 정말 수도 없이 그리는데 단 한 번도 흡족한 동그라미가 그려진 적이 없습니다. 가끔 스태프나 기술 팀 막내한테 보여줘요. 그럼 다들 "와~, 진짜 똥그래요." 하면서 환호해 줍니다. 그게 격려라는 걸 잘 알지요. 그래서 더 완벽한 동그라미에 도전하는 계기로 삼습니다. 제가 그렇게 수없이 찌그러진 동그라미를 그리며 배우는 게 많습니다.
우선은 완벽에 관한 환상과 실제가 이렇게 차이가 크구나 하는 거예요. 오늘 또 재수때기하듯 동그라미를 그려볼 거예요. 또 찌그러져 있겠지요. 저의 하루를 닮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실망할 것도 없지요. p 16~17
소윤 에세이 <작은 별이지만 빛나고 있어>,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걸
김순옥 에세이 <초보 노인입니다>,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
신현림 에세이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에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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