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 이름 붙이기
- 마음의 혼란을 언어의 질서로 꿰매는 감정 사전
- 지은이: 존 케닉
- 옮긴이: 황유원
- 펴낸날: 초판 1쇄 2024년 5월 18일
- 펴낸곳: (주)월북
감정 신조어 사전, <슬픔에 이름 붙이기>
존 케닉의 책 <슬픔에 이름 붙이기>는 책 제목처럼, 감정의 피라미드 가운데 '슬픔'이 차지하고 있는 영역의 수많은 마음의 혼란들에 대해 그들만의 이름을 붙여준 감정 사전이다. 그래서 책을 읽고 있으면, 마치 사전을 펼친 듯하다. 또한 우리들의 감정들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것만 같아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도서관 새책 코너에서 이 책을 집으로 데려왔을 때, 사실 <슬픔에 이름 붙이기>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이 느껴진 것이 사실이다. 슬픔에 관한 구체적인 어휘들을 만들고 그것을 모아 한 권의 신조어 사전이 된 이 책에 대해 처음에는 이러한 새로운 형식의 시도에 관해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곧 그러한 모호한 슬픔의, 구체적인 형상화에 빠져들게 되었다.
새롭게 탄생한 복잡한 슬픔의 어휘들을 살펴보면서 웃음이 나오기도 하는 상황이 무척이나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존 케닉이 12년 동안 만들어낸 신조어들이 지금은 많이 낯설게 다가오지만, 시간이 흘러 어느 순간에는 아주 익숙한 단어들로 성장하여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 책 <슬픔에 이름 붙이기>는 단숨에 읽어 내려가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뒤에서부터 읽어도 괜찮고, 불규칙적으로 책장을 펼쳐 어느 페이지의 아무 단락에 시선을 둬도 무관하다. 감정을 표현하는 신조어들의 목록들이 유쾌하다. 작가 존 케닉은 여러 가지 형태의 슬픔에 그 나름대로의 이름들을 붙이지만, <슬픔에 이름 붙이기>는 슬픔에 관한 내용은 아니다. 그래서 읽으면서도 슬프지 않은 책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몇 가지 신조어들을 소개한다.
플라타 라사( plata rasa)
명사) 돌아가는 식기 세척기가 마음을 달래주는 소리. 식기 세척기가 어머니처럼 꾸준히 쉿, 하고 내는 소리는 그 어떤 것도 혼자서 해내야 했던 적은 없지 않냐며 왠지 우리를 완전히 평화로운 기분에 빠지게 해주는 듯하다. 어원: 라틴어 plata(접시) + rasa(텅 빈 혹은 깨끗이 문질러 닦은)
아모란시아(amoransia)
명사) 짝사랑으로 인한 과장된 설렘. 그 사람의 부재 자체가 삶에 의미를 안겨주는 누군가에게 몰두하며 느끼는, 절대 가질 수 없는 누군가를 향한 애타는 갈망. 어원: 포르투갈어 amor(사랑) + ansia(갈망)
스캐뷸러스(scabulous)
형용사) 몸에 난 어떤 상처를, 심지어 자신이 다치면서까지 기꺼이 계속 놀아주려 한 마음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세상이 해준 사인처럼 자랑스러워하는. 어원: scab(상처의 딱지) + fabulous(멋진)
루스레프트(looseleft)
형용사) 좋은 책을 다 읽은 후 뒤표지의 무게가 자신이 아주 잘 알게 된 인물들의 삶을 가두어버린다는 기분에 상실감을 느끼는. 어원: looseleaf(뺏다 끼웠다 할 수 있는 종이) + left(떠난)
트웰브오투(1202)
명사) 해야 할 일들로 머리가 지나치게 과열된 티핑 포인트(작은 변화가 하나만 더 일어나도 갑자기 큰 영향을 초래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른 단계). 죄책감 때문에 어떤 일도 뒤로 미루지 못한 채 처리해야 할 모든 사소한 일들의 최우선 순위를 정하느라 꼼짝도 못 하게 된다. 어원: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기 직전에 '1202' 경고음이 울리며 컴퓨터가 처리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데이터가 수신되고 있음을 알렸다.
지은이 존 케닉에 대하여
존 케닉은 영상 편집자, 성우, 그래픽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사진작가, 영상 감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다채로운 이력을 가진 그는 2009년 개인 블로그에서 '슬픔에 이름 붙이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의 박학한 언어학적 지식과 마음의 뉘앙스를 잡아내는 섬세하고도 집요한 감각으로 금세 수많은 사람의 공감을 자아냈다. 이 프로젝트는 유튜브 채널로 발전하여 소설가 존 그린과 비욘세에게 상찬을 받는가 하면 뉴욕타임스 같은 매체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한 편의 시이자 사전인 <슬픔에 이름 붙이기>는 그의 첫 번째 책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옮긴이 황유원은
서강대학교 종교학과와 철학과를 졸업했고, 동국대학교 대학원 인도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13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해 시인이자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 <하얀 사슴 연못> <초자연적 3D 프린팅>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모비 딕> <바닷가에서> <폭풍의 언덕>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 <패터슨> 등이 있다.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김현문학패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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