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타악 1세대 연주자이신 박동욱 선생은 우리나라 현대음악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타악 분야의 대부이십니다. 2011년 7월 선생님 자택에서 인터뷰와 사진 촬영이 있었는데요. 집안 곳곳이 여러 가지 생소한 타악기들로 빼곡했습니다. 가끔씩 연주회장에서 선생님을 뵙게 될 때마다, 선생님께서는 저희 아이에게 "타악기 배워 볼 생각 없어?"라는 말씀을 종종 하시곤 했죠. 선생님께서는 자기와의 대화, 그 철학적인 생각의 깊이를 더해 침묵 속에서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듣게 되면 참된 삶을 살게 된다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꼭 진실되게, 간곡히 꼭 이뤄지리라 믿고 꾸준히 전진하면 언젠가는 이뤄진다는 말씀을 해주신 선생님의 멋진 모습이 떠오릅니다.
영혼의 목소리, 그 깊은 울림
한국 클래식 타악의 선구자
박동욱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타악기 전공자인 박동욱 선생은 단순한 리듬악기로 간과되었던 타악기를 무대 한가운데에 우뚝 서게 한 한국 클래식 타악의 선구자이다. 현재 연주는 물론 작곡가와 지휘자, 교육자로서 타악기의 깊은 울림과 국악의 전통이 어우러지는 작품 창작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는 그는 한국을 넘어 세계 타악계의 거대한 산봉우리다.
글 엄익순
마음의 소리, 한국인의 정서를 그려내다
팀파니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타악기가 한자리에 모여 있는 듯한 박동욱 선생의 작업실에서 방짜 유기 하나가 유독 눈에 띄었다. 각양각색의 타악기들이 향연을 벌이듯, 서로 그 자태를 뽐내고 있는 가운데 묵묵히 자리해 있는 놋그릇은 오히려 그 자체에서 은은한 청아함이 느껴졌다.
"1973년 미국에서의 활동을 접고 우리나라로 돌아와야겠다는 결심을 했을 때 한 가지 소망이 있었어요. 연주자로서 한국인의 정서를 담은 음악을 하고 싶었던 것이죠. 이 방짜 유기는 한국의 소리를 찾기 위해서 다양한 시도를 하던 중, 우연히 그 울림을 듣는 순간 마치 영혼의 두드림 같다는 느낌이 들었죠. 세계의 어느 타악기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여운이 감돌아 지금까지도 간직하고 있답니다. 그 후로 제 작품에 많이 쓰이고 있기도 해요."
비단 방짜 유기뿐만이 아니다. 대나무 숲에 바람이 불 때의 소리를 재현하기 위해 길이가 다른 대나무 통을 엮어 차임을 만들기도 하고, 크고 작은 항아리를 조합하여 물방울의 낙하나 그 울림을 표현했으며, 윷가락과 다듬잇돌을 비롯하여 배나무로 만든 목탁, 가래, 소방울, 채, 각종 열매 등을 작품의 소재로 등장시키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우리 고유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장고나 꽹과리, 징과 같은 국악기와 조화를 이뤄 보다 한국적인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타악'이라는 용어 자체가 낯설었던 우리나라 음악사에 그의 등장으로 인해 처음으로 '퍼커셔니스트'라는 용어가 기록되었다. 또한 한국인 최초의 타악기 전공자로서 수석 팀파니 주자가 되어 오케스트라를 이끌게 되자, 고전음악만을 연주했던 우리나라의 교향악단들이 현대음악을 연주할 수 있게 된 전환기를 만들었으며, 작곡가들에게는 타악기를 활용하여 보다 새로운 작품의 소재를 넓게 활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고, 세계무대에서 빼어난 실력으로 주목받고 있는 많은 타악기 연주자들을 키워냈다.
"미국 매네스 대학에서 타악을 전공하던 시절 음악과 미술, 연극, 문학 등 모든 분야의 예술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행사를 미국 주정부에서 주최한 적이 있었죠. 그때 선발된 학생들을 지도하는 조교가 되었는데, 그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 중 동양인은 저 한 명뿐이었어요. 그 당시가 1967년이었는데 한국이라는 나라는 물론 아시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없었고,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의 음악에 대해서 무척 궁금해하더군요. 그래서 한국의 정서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작품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아리랑'을 떠올리게 됐지요. 플루트 3대가 아리랑의 선율을 연주하고, 우리나라의 민속 장단을 품어내는 타악기가 어우러진 그 작품을 일주일 만에 완성하여 사람들에게 들려주자, 숨죽여 듣고 있던 몇백 명의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내더군요. 며칠 후 다시 앙코르 공연을 하면서 결심했죠. '한국으로 돌아가 타악기 연주자들을 양성하자. 그래서 우리의 전통과 혼이 깃든 음악을 세계인에게 자랑차게 보여줄 수 있는 디딤돌이 되자!라고요."
우리나라에 클래식 타악을 전파하다
박동욱 선생은 그 숙명 같은 결심을 '의리'라고 말한다. 뉴욕 매네스 음대에서 타악을 전공하고, 부전공으로 작곡을 공부한 후 모교에서 강의를 했고, 매네스 대학 최초의 타악기 앙상블을 창설했으며, 아메리카 윈드 심포니의 솔리스트로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던 팀파니 주자. 연주뿐만 아니라 작곡가로서도 인정받은 그는 음악가로서 보다 화려한 길을 갈 수 있었던 미국을 떠나 우리나라로 돌아온다. 타악 분야에 있어서는 황무지였던 한국.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그때의 결정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국립교향악단 수석 팀파니스트로 활동하면서, 우리나라에 클래식 타악을 전수하고 더 나아가 독특한 새로운 타악기를 연구하게 됐죠. 1983년에는 국내 최초로 타악독주회를 열었어요. 단순한 리듬악기로 여겨져 그저 선율 악기를 보조하는 데에만 머물렀던 타악기를 당당히 무대 앞으로 끌어내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독자적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죠. 한국 전통 타악기와의 어울림을 통해 민족 정서가 스며든 작품을 선보여 타악기 음악의 지평을 넓힌 것도 물론 보람이 있지만, 실력 있는 타악기 주자들이 많이 배출되어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면 무척이나 기쁘답니다. 그보다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어요."
실제로 국내외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모든 타악기 주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동욱 선생의 열정이 한국 음대에 타악기 전공 파트를 일궈냈고,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에 타악 전임 교수도 배출시켰다. 1981년에는 보다 체계적으로 연주자들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타악인회'를 창립하여 젊은 음악가들의 연주회를 후원하며, 국제 교류를 통해 세계적인 대가들을 국내에 초청하기도 했다.
김덕수패 사물놀이를 미국에 처음으로 소개한 것도 바로 박동욱 선생이다. 1979년 국립교향악단의 첫 해외 순회공연 중, 뉴욕 카네기홀에 울려 퍼진 '대비'. 이 작품은 서양 타악기와 한국의 전통악기가 한데 어우러진 작품으로 해외에서 호평받은 그의 걸작이다. '나래 80', '팀파니 독주와 타악기 앙상블을 위한 은유', '강가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흙의 소리' 등 헤아릴 수 없는 그의 음악세계가 우리나라 타악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승화시키다
"타악은 태초의 울림,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들의 흔적이 리듬을 통해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리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죠. 많은 예술가들이 창작의 영감을 타악에서 찾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모든 예술은 자연에서 비롯되는데, 바로 타악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승화시킨 것이라고 생각해요."
산책길 모퉁이에서 가냘프게 피어난 들꽃의 향기로부터, 때로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천사들의 합창이 되어 행복함을 안겨주고, 장마 후 강물이 스치고 간 자리에 남아 있는 모래 물결에도 박동욱 선생은 가슴이 설렌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타악, 그 소리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풀 한 포기, 벌레가 갉아먹은 볼품없는 잎사귀도 그의 작품 안에서는 음악적으로 형상화된다.
그는 요즈음 바다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편경, 태징, 좌고, 무종, 자바라, 운라 등의 국악 타악기와 윈드차임, 공, 레인스틱, 템플블록, 모듬북 등의 특수 악기를 벗 삼아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출렁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고래 등에 올라 용궁으로 내려가 바닷속 신비를 만나기도 한다. 다름 아닌 이것은 KBS 국악관현악단의 200회 기념 연주회에서 선보일 그의 작품이다. 만선의 환희, 거친 비바람을 이겨낸 고난의 극복, 기나긴 항해를 끝내고 고향으로 향하는 그리움 등의 묘사가 마치 200회라는 녹록지 않은 여정에 대한 격려인 듯하다. 그 곡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마치 한 편의 시를 읊조리듯, 또한 누군가는 한 폭의 그림에 빠져 그들 모두가 자연의 한 부분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의 가장 큰 염원은 자연 속에서 음악을 느낄 수 있는 심성교육놀이터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저는 아이들이 가족과 함께 놀러와 음악 그 자체에서 행복을 느끼고, 그로 인해 바른 인성을 키웠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조롱박을 예로 들어볼까요. 봄에 아이들이 직접 씨를 뿌리고, 꽃이 피는 7월까지 사랑으로 키우면서 열매를 맺기까지 정성으로 인내하며, 껍질을 말려 호리병박이 되면 그 안에 콩이나 쌀과 같은 각종 재료를 넣어 가족음악회를 열어도 보고요. 또 하나의 악기가 된 박의 표면에 나만의 시어를 적어 문학가가 되어 보기도 하고, 화가가 되어 그림도 그려 보면서 예술적 체험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 호리병박이 바로 하나의 타악기입니다. 식물을 직접 길러보면서 생명체에 대한 존엄성도 느낄 수 있고요. 음악을 비롯한 모든 예술교육은 바로 이런 모양새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제가 바라는 심성교육놀이터는 바로 아이들의 상처 받은 마음을 위로하고, 밝게 자라날 수 있도록 마음의 정화가 이뤄지는 공간이죠. 동시에 현대음악의 산실이 되기도 하고요. 바로 그 길잡이 안내를 타악이 하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소년고적대가 연주하는 작은북 소리를 듣고 그 울림에 충격을 받았다. 두드릴 수 있는 물건만 있으면 젓가락을 가지고 북을 치는 연습을 했다. 결국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밴드부에서 그토록 연주하고 싶었던 작은북을, 그리고 해군 군악대에서도 북과 함께했다. 매네스 음대의 장학생이 되었고, 세계가 탐내는 타악기 연주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한국 타악계를 이끈 선구자로 우리 곁에 있다. 그 든든한 울타리가 우리 음악계를 지탱하고, 감싸주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하다. 박동욱 선생의 자리가 높은 산봉우리가 되어 다가오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Vol. 48 AUGUST 2011 Music Friends
정글의 세계에서 음악을 설계하는 창조의 마법사, 작곡가 강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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