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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너머 332

절제된 미학, 디자이너 홍미화

절제된 미학으로 승화된 완벽한 자연스러움 패션 디자이너 홍미화 얼마 전 뉴스를 읽다가, 홍미화 패션 디자이너가 네팔에 이어 아프리카 가나와 남아공 지역을 돌며 지구촌 문화교류 패션쇼를 개최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1993년 파리에서 화려한 무대의 런웨이 대신 뱅센 숲 속에서 500여 마리의 반딧불을 날리며 패션쇼를 열어 화제가 되었던 디자이너 홍미화의 패션은 늘 '자연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절제된 미학으로 승화된 완벽한 자연스러움. 디자이너 홍미화에 대해 강한 인상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아주 오래전에 한 매스컴을 통해 본 그녀의 당당한 자신감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디자이너의 사명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 시대의 공기와 흐름을 같이 하는 오리지널리티가 바로 디자..

초경량 항공기 예비 여성교관 김은주

노을 속으로 뿌려놓은 스물세 살의 飛翔 초경량 항공기 예비 여성 교관 김은주 어렸을 적 뭉게구름이 떠있는 어느 오후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저 깊은 바닷속으로 빠져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조금만 더 가까이 그곳으로 다가가기 위해 저 구름을 타고 바람을 가르며 달려가는 그러한 작은 상상을 하는 동안, 이미 나의 어린 시절은 온데간데없이 어느새 이만큼이나 커져 있었다. 지금 나의 시야를 독차지하고 있는 그것들만이 전부, 라는 나의 짧은 생각이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 것은 바로 하늘에서 이곳의 지상을 바라보았을 때였다. 항상 고개를 들어 우러러만 보았던 구름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장난을 치고 있을 즈음, 그 너머에서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던 한낮의 태양은 어느덧 붉은 기운으로 출렁거리는 노을에게 그..

너는 소중한 나의 아들이란다!

너는 소중한 나의 아들이란다! 내 나이 어느덧 서른일곱.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갈 딸과 다섯 살 난 아들 녀석을 둔 한 집안의 가장이다. 돌이켜 보면, 지금 순탄한 30대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너무나 방황했던 고등학교 시절을 사랑으로 바로잡아 주셨던 나의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던 고등학교 2학년 시절, 7월 20일 그날은 나에게 너무나 큰 충격을 안겨준 날이었다. 방학식을 마친 나는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미국에 살고 계신 할머니와 고모가 새벽에 공항에 도착하셨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할머니는 고모가 살고 계신 미국으로 건너가셨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한 번도 뵙지 못했었다. 집에 도착하여 현관문을 여는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꿈꾸는 백수, 전국백수연대 주덕한

꿈꾸는 백수 전국백수연대 주덕한 1998년 11월 12일, 신문과 라디오를 비롯한 모든 언론 매체에서는 이들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멘트는 한결같이 웃음으로 마무리되었다. 마치 어느 지면의 유머란을 지나친 듯. 그것은 우리나라의 백수가 일본 측 주선으로 도쿄 방문 일정에 올랐다는 내용이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전백련의 지킴이인 주덕한 씨. 그 소식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라는 모임을 잘 알고 있지 못했다. 일본에 다녀오셨으니, 이번에는 그들을 초청해야 되나요? 그렇지 않아도, '차기 회담장소 선정' 문제로 막판까지 합의를 이루지 못했었죠. 제가 일본으로 떠날 때에는 보름치 용돈으로 단 6만 원 밖에 가져가지 않았어도 충분했어요. 왕복 항공권은 물론 모든 숙박 비용과 용돈까지 일본 측에서 부..

사진가 최광호, 그의 렌즈 속에서 부활하는 삶의 영상들

그의 렌즈 속에서 부활하는 삶의 영상들 사진가 최광호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다. 그의 몸에서 카메라가 떨어져 있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고. 마치 숨을 내쉬듯, 그는 셔터를 누른다. 모든 사고와 인식활동, 그리고 그 속에서 배어나는 가족사와 생활모습. 사진가 최광호의 사진은 곧 그의 삶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 때문에 최광호 사진가를 만난 것은 아주 오래전, 1998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길목에서였다. 그의 작업실로 향하는 길은 두 번의,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풍경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 깊지 않은 경사의 오르막길을 지나 어느 골목으로 접어들었을 때, 마치 하늘과 대면하려는 듯한 끝없는 돌계단. 하나, 둘, 셋~~ 조금의 가쁜 호흡이 동반되는 이 공간을 오르내리는 동안 사람들은 무..

슬프도록 아름다운 12줄의 현, 가야금

슬프도록 아름다운 12줄의 현 가야금 '보름달 밝은 밤에 청초하고 맑은 소리 울리나니, 내 마음도 바람이리라~~~' 이것은 조선시대 한 유생이 달빛 아래서 가야금 소리를 듣고 한 말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가야금은 구슬픈 가락으로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을 함께 해왔습니다. 백색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색이라면, 신라시대 대표 3현(가야금, 거문고, 향비파) 중 하나였던 가야금은 우리 민족을 대변하는 악기입니다. '가얏고'라고도 불리는 가야금은 오동나무 공명반에 명주실을 꼬아서 만든 12줄을 세로로 매어 각 줄마다 안족(雁足: 기러기 발)을 받쳐놓고 손가락으로 뜯어서 소리를 냅니다. 줄풍류(가야금이나 거문고 등의 현악기 중심인 합주)를 비롯하여 가곡 반주, 가야금산조, 가야금병창 등 한국음악 전반에 걸쳐 사용되..

독특한 작품 세계를 만들어낸, 예술가들의 특별한 습관

독특한 작품 세계를 만들어낸 예술가들의 특별한 습관 거리의 뒷골목 선술집이나 살롱에서 플라멩코를 연주하는 서민의 악기로만 간주되었던 기타를 당당히 세계 유수의 무대에서 연주되는 악기로 변신시킨 안드레스 세고비아 토렌스. 그의 하루 연습량은 오직 5시간 정도였다고 합니다. 오전에 두 번, 오후에 두 번으로 나누어 각각 1시간 25분씩 연습했는데 그 시간은 단 몇 분의 오차도 없었다고 주위 사람들은 전합니다. 그 정도의 시간은 다른 사람에 비해 연습량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고비아의 스타카토라든가 박자의 유연함이 주는 생동감 등이 지금까지도 다른 여느 연주자들보다 한층 멋스럽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세고비아가 진정으로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그러한 ..

신입사원이 넘어야 할 장애물

신입사원이 넘어야 할 장애물 일 년 열두 달 가운데, 기업들이 가장 활기찬 시기는 언제일까요. 예전만 해도 새싹들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봄날이 되면 많은 회사들도 그들만의 새싹을 키우기 위해 정신없이 분주해졌는데요. 요즘에는 채용시기가 일 년 내내 상시로 열리다 보니, 신입사원들을 만나게 되는 일도 특정시기가 따로 없는 것 같습니다. 아직은 업무에 조금은 서툴기도 하고, 때로는 갑자기 닥친 위기상황에 좌절을 느끼기도 하는 초보 사회인들. '신입사원'이라고 불리는 그들이 넘어야 할 장애물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신입사원 시절에는 업무상 조금 서투른 점이 있다 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들을 다독입니다. 격려와 칭찬으로 시들어가는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주고, 때로는 날카로운 조언으로 새로운..

세상 속으로 떠난 여행, 거리의 화가 김태연

세상 속으로 떠난 여행 거리의 화가, 김태연 그의 날개는 아직 접혀 있었다. 푸르른 창공을 향해 질주하는 화려한 비상만을 꿈꾸고 있었기 때문만은 결코 아니었다. 단지 새라는 이유만으로 부여된 똑같은 날갯짓. 그는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날 수 있다, 라는 이유만으로가 아닌 왜 날아야만 하는지에 대한 그 질문에 대해서. 어느덧 일 년 반. 하늘이 아닌 사람들의 세상 속으로 찾아든 작은 새 한 마리의 끝나지 않은 작은 전쟁. 스물여섯 살의 그의 젊음은 그렇게 길 위를 걷고 있었다. "그러나 젊은이~~~" "아닙니다." "글쎄, 이런 경우가~~~" 연세가 지긋한 어느 노신사 앞에서 한 젊은이가 예의를 갖춘 채, 무엇인가를 건네고 있었다. 한사코 뿌리치는 거절과 정중히 부탁드리는 그들의 실랑이가 계속되는 가운..

그윽한 감정의 깊이와 향기, 먹

그윽한 감정의 깊이와 향기 먹 추사 김정희는 그의 70 평생에 벼루 10개를 밑창 냈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그의 글씨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살아있는 감정이 화선지를 뚫고 울컥 쏟아져 나올 것만 같습니다. 그것은 다양한 서체가 튀어나오는 컴퓨터 화면 속의 글씨와도, 또한 선을 그리거나 글자를 쓰기 위한 도구인 서양의 잉크와도 분명 그 느낌이 다릅니다. 왠지 이 속에서는 마음이 동요되는 전율이 꿈틀거리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선조들은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 그것이 단지 손의 기교에 머무르는 것을 우려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획 하나에도 혼을 담고, 자신의 학문과 세상을 바라보는 정신을 담아 몸과 마음의 수련 방식으로 삼았다고 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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