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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소중한 나의 아들이란다!

너는 소중한 나의 아들이란다! 내 나이 어느덧 서른일곱.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갈 딸과 다섯 살 난 아들 녀석을 둔 한 집안의 가장이다. 돌이켜 보면, 지금 순탄한 30대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너무나 방황했던 고등학교 시절을 사랑으로 바로잡아 주셨던 나의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던 고등학교 2학년 시절, 7월 20일 그날은 나에게 너무나 큰 충격을 안겨준 날이었다. 방학식을 마친 나는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미국에 살고 계신 할머니와 고모가 새벽에 공항에 도착하셨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할머니는 고모가 살고 계신 미국으로 건너가셨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한 번도 뵙지 못했었다. 집에 도착하여 현관문을 여는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꿈꾸는 백수, 전국백수연대 주덕한

꿈꾸는 백수 전국백수연대 주덕한 1998년 11월 12일, 신문과 라디오를 비롯한 모든 언론 매체에서는 이들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멘트는 한결같이 웃음으로 마무리되었다. 마치 어느 지면의 유머란을 지나친 듯. 그것은 우리나라의 백수가 일본 측 주선으로 도쿄 방문 일정에 올랐다는 내용이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전백련의 지킴이인 주덕한 씨. 그 소식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라는 모임을 잘 알고 있지 못했다. 일본에 다녀오셨으니, 이번에는 그들을 초청해야 되나요? 그렇지 않아도, '차기 회담장소 선정' 문제로 막판까지 합의를 이루지 못했었죠. 제가 일본으로 떠날 때에는 보름치 용돈으로 단 6만 원 밖에 가져가지 않았어도 충분했어요. 왕복 항공권은 물론 모든 숙박 비용과 용돈까지 일본 측에서 부..

보령해저터널 건너 원산도 오션뷰 카페, 원산창고

보령 해저터널 건너 원산도 오션뷰 카페 원산창고 지난주에 세종시로 출장을 갔다가 업무가 잘 진행되어 생각보다 회의가 빨리 끝나게 되었습니다. 이번 출장에는 입사한 지 1년이 되지 않은 막내 신입도 함께 했었는데, 아무래도 거래처의 여러 분들과 만나다 보니 긴장을 많이 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특별히 하고 싶은 것이 있느냐고 묻자, 보령해저터널을 한번 가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세 명의 저희 일행은 일제히 운전석에 앉아 계신 이사님에게 시선이 모아졌습니다. ㅎㅎ 그렇게 갑자기 방향을 틀어 대천의 겨울바다를 힐끔 쳐다보고, 곧바로 보령해저터널로 진입하게 되었고, 원산도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원산창고는 막내의 폭풍 검색으로 잠시 쉬어가게 된, 멀리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카페..

사진가 최광호, 그의 렌즈 속에서 부활하는 삶의 영상들

그의 렌즈 속에서 부활하는 삶의 영상들 사진가 최광호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다. 그의 몸에서 카메라가 떨어져 있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고. 마치 숨을 내쉬듯, 그는 셔터를 누른다. 모든 사고와 인식활동, 그리고 그 속에서 배어나는 가족사와 생활모습. 사진가 최광호의 사진은 곧 그의 삶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 때문에 최광호 사진가를 만난 것은 아주 오래전, 1998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길목에서였다. 그의 작업실로 향하는 길은 두 번의,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풍경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 깊지 않은 경사의 오르막길을 지나 어느 골목으로 접어들었을 때, 마치 하늘과 대면하려는 듯한 끝없는 돌계단. 하나, 둘, 셋~~ 조금의 가쁜 호흡이 동반되는 이 공간을 오르내리는 동안 사람들은 무..

슬프도록 아름다운 12줄의 현, 가야금

슬프도록 아름다운 12줄의 현 가야금 '보름달 밝은 밤에 청초하고 맑은 소리 울리나니, 내 마음도 바람이리라~~~' 이것은 조선시대 한 유생이 달빛 아래서 가야금 소리를 듣고 한 말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가야금은 구슬픈 가락으로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을 함께 해왔습니다. 백색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색이라면, 신라시대 대표 3현(가야금, 거문고, 향비파) 중 하나였던 가야금은 우리 민족을 대변하는 악기입니다. '가얏고'라고도 불리는 가야금은 오동나무 공명반에 명주실을 꼬아서 만든 12줄을 세로로 매어 각 줄마다 안족(雁足: 기러기 발)을 받쳐놓고 손가락으로 뜯어서 소리를 냅니다. 줄풍류(가야금이나 거문고 등의 현악기 중심인 합주)를 비롯하여 가곡 반주, 가야금산조, 가야금병창 등 한국음악 전반에 걸쳐 사용되..

피카소와 함께 한 어느날 오후, 추리소설 같은 사진이야기

피카소와 함께 한 어느 날 오후 추리소설 같은 사진이야기 우리가 무엇인가를 담아내는 방법 중 가장 진실되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은 바로 '사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은 아무리 유명한 문학가가 빼어난 구성으로 뽑아낸 개연성 있는 허구의 묘미나, 목소리 고운 성악가가 내려놓는 깊은 저음의 감동과는 비교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대부분의 것들은 보이는 그 대상보다는 그것을 담아내고자 하는 객체의 입장에서 휘둘러지는 힘이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진 역시 카메라라는 통과의례를 거쳐 여과되긴 하지만, 최소한의 가감으로 있는 그대로를 옮겨 놓을 수 있는 이 안에서 만큼은 포착되는 그 대상이 완벽한 주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세련되지 못한 편견 때문인지, 저는 꾸미는 사진에는 왠..

독특한 작품 세계를 만들어낸, 예술가들의 특별한 습관

독특한 작품 세계를 만들어낸 예술가들의 특별한 습관 거리의 뒷골목 선술집이나 살롱에서 플라멩코를 연주하는 서민의 악기로만 간주되었던 기타를 당당히 세계 유수의 무대에서 연주되는 악기로 변신시킨 안드레스 세고비아 토렌스. 그의 하루 연습량은 오직 5시간 정도였다고 합니다. 오전에 두 번, 오후에 두 번으로 나누어 각각 1시간 25분씩 연습했는데 그 시간은 단 몇 분의 오차도 없었다고 주위 사람들은 전합니다. 그 정도의 시간은 다른 사람에 비해 연습량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고비아의 스타카토라든가 박자의 유연함이 주는 생동감 등이 지금까지도 다른 여느 연주자들보다 한층 멋스럽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세고비아가 진정으로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그러한 ..

폐쇄된 그들만의 암호, 압구정동

폐쇄된 그들만의 암호 압구정동 압구정동이라는 문화의 한 조각을 들춰보면 그 속에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한 단면이 동시에 그려져 있다. 이곳의 패션과 건축, 혹은 거리의 사람들이 혼재된 풍경을 보면 압구정동의 물질적 토대는 탈 산업과 소비의 축적으로 지탱되고 있는 듯하다. 한국 물질문화의 쇼윈도 역할을 해내고 있는 압구정동은 마치 365일 동안 단 하루의 휴일도 없이 손님을 맞이하는 잘 정돈된 전시장 같다. 예전부터 방송국 카메라가 가장 빈번하게 찾아오는 곳이며,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신종 구경거리 지역으로 고급 물품이 즐비해 있는 부의 상징으로 대변된다. 그러나 압구정동은 회원제로 운영되는 카페와 멋진 겉모습을 갖추지 못한 손님에게는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일정한 수준 이상의 소비 능..

신입사원이 넘어야 할 장애물

신입사원이 넘어야 할 장애물 일 년 열두 달 가운데, 기업들이 가장 활기찬 시기는 언제일까요. 예전만 해도 새싹들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봄날이 되면 많은 회사들도 그들만의 새싹을 키우기 위해 정신없이 분주해졌는데요. 요즘에는 채용시기가 일 년 내내 상시로 열리다 보니, 신입사원들을 만나게 되는 일도 특정시기가 따로 없는 것 같습니다. 아직은 업무에 조금은 서툴기도 하고, 때로는 갑자기 닥친 위기상황에 좌절을 느끼기도 하는 초보 사회인들. '신입사원'이라고 불리는 그들이 넘어야 할 장애물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신입사원 시절에는 업무상 조금 서투른 점이 있다 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들을 다독입니다. 격려와 칭찬으로 시들어가는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주고, 때로는 날카로운 조언으로 새로운..

천북 굴단지 백종원 3대 천왕 맛집 해당화 굴 수산 굴찜

천북 굴단지 백종원 3대 천왕 맛집 해당화 굴 수산 굴찜 어떻게 하다 보니, 이번 달은 매주 남편의 출장이 있었고 주말도 같이 보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주는 모처럼 오롯이 휴일을 쉴 수 있게 되어 시골에 계신 아빠를 모시고 천북 굴단지로 굴을 먹으러 갔습니다. 달력을 보니, 작년에는 12월에 이곳을 다녀오기도 했었네요. 천북 굴단지는 홍성방조제 완공 이후 마을 사람들이 가족단위로 소규모 식당들을 운영하면서부터 조성된 곳이라고 합니다. 1990년대 초에는 석화구이가 주 메뉴였지만 굴찜이나 굴밥, 굴물회 등의 다양한 메뉴들을 선보이며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모이게 했다고 하네요. 처음에는 비닐하우스 식당들로 시작된 이곳이 지금은 1백여 곳의 대규모 상권을 이루었고, 매년 굴 축제도 열리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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